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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위정 - 17. 안다는 것에 대해 본문

고전/논어

논어 위정 - 17. 안다는 것에 대해

건방진방랑자 2021. 9. 2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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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안다는 것에 대해

 

 

子曰: “!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 音汝.

, 孔子弟子, , 子路. 子路好勇, 蓋有强其所不知以爲知者, 故夫子告之曰: 我敎女以知之之道乎! 但所知者則以爲知, 所不知者則以爲不知. 如此則雖或不能盡知, 而無自欺之蔽, 亦不害其爲知矣. 況由此而求之, 又有可知之理乎?

 

 

 

 

 

 

해석

子曰: “!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공자께서 유야, 너에게 안다고 하는 것에 대해 가르쳐주겠노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 音汝.

, 孔子弟子, , 子路.

유는 공자 제자니, 성은 중이고 자는 자로다.

 

子路好勇, 蓋有强其所不知以爲知者,

자로는 용맹을 좋아하니 대개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우기는 사람이다.

 

故夫子告之曰: 我敎女以知之之道乎!

그래서 부자가 그에게 고했다. “나는 너에게 아는 것의 도를 가르쳐주겠다!

 

但所知者則以爲知, 所不知者則以爲不知.

다만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라.

 

如此則雖或不能盡知, 而無自欺之蔽,

이와 같다면 비록 혹 다 알 수 없더라도 스스로 속이는 폐단이 없고

 

亦不害其爲知矣.

또한 앎이 됨을 해하지 않는다.

 

況由此而求之, 又有可知之理乎?

하물며 이런 태도로 구한다면 또한 알 수 있는 이치에 있어서랴.

 

인간의 앎에 있어서 가장 큰 병폐는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즉 무엇을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모르느냐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 지를 명료하게 아는 인간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우기는 법이 없다. 그리고 그 무지의 영역은 무지한 상태로 소중하게 간직되며, 언젠가는 앎의 영역으로 전이되리라는 소망의 대상이 된다. 인간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느냐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을 때만이 앎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의 영역은 부지위부지(不知爲不知)’를 통해서만 반사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영역인 것이다. 바로, 모르는 것을 확실히 모르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자에게만 비로소 진정한 앎에 대한 발돋움이 가능케 되는 것이다. -김용옥, 논어한글역주, 1, 548

 

앎의 기본을 말한 명구로서 논어 위정(爲政) 편에 나온다. 공자는 자신보다 아홉 살 어린 제자 자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에게 어떤 것을 안다는 것을 가르쳐줄까. 어떤 것을 알면 그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면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아는 것이다[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아는 것과 아는 척하는 것의 차이를 말한 공자의 말은 앎의 기본이 정직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맨 마지막의 ()’자는 지혜(智慧)의 의미다. 모르고도 안다고 하고 다른 사람의 눈을 속이는 거짓으로 아는 척하는 것은 앎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이 말은 알아야 할 것은 그것을 알아야 하고, 알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학자들은 더 확장하여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 굳이 쓸데없는 것까지 배울 필요가 있느냐 하는 의미로 풀이하기도 하는데 공자의 원의를 과대포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공자의 ()’에 대한 태도는 어떠했는가. 팔일(八佾)에 나오는 얘기다. 공자가 태묘에 가서 모든 것을 하나하나 묻자 어떤 사람이 공자를 비꼬아 누가 추 땅의 아들(공자를 가리킴)이 예를 안다고 말했는가? 태묘에 들어서는 매사를 묻더라[孰謂鄹人之子知禮乎? 入太廟, 每事問]”고 하자 공자는 이를 듣자마자 이것(매사를 묻는 것)이 예다[是禮也].”고 되받아쳤다. 공자의 말은 매사에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경계하고, 모든 것은 절차를 거쳐야 하고, 물어보고 처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공자가 말하는 앎이란 근신의 미덕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란 마음속으로 자신이 충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지 스스로 반성하고 밖으로 존현(尊賢)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태만함과 오만함을 경계하며 진정한 학문의 길을 가라는 메시지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않은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논어 첫 구절도 이런 맥락이 아닌가.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인용

목차 / 전문 / 한글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한시미학산책 / 강의와 여행의 공통점 / 금지된 욕망, 그리고 한문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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