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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진에 유배하며 지방민의 이야기를 담다
다산 선생이 귀양살이로 강진땅에 당도한 때는 1801년 추운 겨울이다.
복풍이 나를 날리는 눈처럼 몰아쳐서
남으로 강진읍내 매반가(賣飯家)에 닿았도다.
그는 국왕으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그래서 자기의 개혁적인 이념을 현실정치에 적용해보려 했다. 국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정국이 뒤바뀌자 그는 두 차례나 투옥되었다. 그리고 간신히 형륙(刑戮)을 면하여 시골 주막 노파에게 의탁하는 신세로 낙착(落着)이 된 것을 천행(天幸)으로 여겨야 했다. 그가 느꼈던 좌절감과 적막한 기분이 위의 시구에 잘 드러나 있다.
바로 이때 그는 「탐진촌요(耽津村謠)」, 「탐진농가(耽津農歌)」, 「탐진어가(耽津漁歌)」 같은 연작시 3편과 「애절양(哀絶陽)」 등을 짓는다. 이들 작품은 모두 강진지방의 농민ㆍ어민들의 생활현실에서 취재한 것으로 방대한 다산시의 목록 속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현실주의 문학의 발전에 하나의 획기적인 몫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 새 자료로 공개하는 「도강고가부사(道康瞽家婦詞)」는 또한 그가 이 무렵에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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