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도강고가부사(道康瞽家婦詞) - 다산시(茶山詩)의 현실주의에 대한 재인식「소경에게 시집간 여자(道康瞽家婦詞)」를 읽고 본문

한시놀이터/서사한시

도강고가부사(道康瞽家婦詞) - 다산시(茶山詩)의 현실주의에 대한 재인식「소경에게 시집간 여자(道康瞽家婦詞)」를 읽고

건방진방랑자 2021. 8. 18. 17:42
728x90
반응형

다산시(茶山詩)의 현실주의에 대한 재인식

소경에게 시집간 여자(道康瞽家婦詞)를 읽고

창작과비평1988년 겨울호에 발표할 때 지은 소개글로, 이조시대 서사시2, 창비, 2020, 307~316쪽에 수록되어 있다.

 

 

임형택

 

 

1. 지방민의 이야기를 담다

 

 

다산 선생이 귀양살이로 강진땅에 당도한 때는 1801년 추운 겨울이다.

 

 

복풍이 나를 날리는 눈처럼 몰아쳐서

남으로 강진읍내 매반가(賣飯家)에 닿았도다.

北風吹我如飛雪 南抵康津賣飯家 - 客中書懷

 

 

그는 국왕으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그래서 자기의 개혁적인 이념을 현실정치에 적용해보려 했다. 국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정국이 뒤바뀌자 그는 두 차례나 투옥되었다. 그리고 간신히 형륙(刑戮)을 면하여 시골 주막 노파에게 의탁하는 신세로 낙착(落着)이 된 것을 천행(天幸)으로 여겨야 했다. 그가 느꼈던 좌절감과 적막한 기분이 위의 시구에 잘 드러나 있다.

 

바로 이때 그는 탐진촌요(耽津村謠), 탐진농가(耽津農歌), 탐진어가(耽津漁歌)같은 연작시 3편과 애절양(哀絶陽)등을 짓는다. 이들 작품은 모두 강진지방의 농민ㆍ어민들의 생활현실에서 취재한 것으로 방대한 다산시의 목록 속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현실주의 문학의 발전에 하나의 획기적인 몫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 새 자료로 공개하는 도강고가부사(道康瞽家婦詞)는 또한 그가 이 무렵에 쓴 것이다.

 

 

 

 

2. 내용 및 예술적인 특징

 

 

이 작품은 360행의 장편 서사시다. 다산시 가운데에서 최대의 작품이다. 문제는 길이에 있지 않다. 하나 시인이 주어진 사건에다 주제를 부여해 엮어가는 데 그만한 분량이 소요되었을 것이므로, 길이는 거기 상응하는 비중과 의미가 들어가 있다고 본다.

 

물론 작품에 대한 결정적 평가는 앞으로 충분한 논의와 분석을 기다려서 내려질 것이다. 나는 처음 소개하는 입장에서 이 시의 내용 및 예술적인 특징에 관해 몇 가지 측면을 언급해두고자 한다.

 

 

첫째, 작품 구성상의 특징

 

이 시는 한 여성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 내용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이야기를 시형식으로 엮은 셈이다. 그런데 어디에 이런 여자가 살았는데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더라는 식으로 풀어나가지 않고 서술 공간과 시간이 한 지점 한 시각에서 시작하여 끝맺고 있다.

 

시의 현장은 강진읍내의 어느 거리다. 그곳에 한 젊고 아리따운 여자가 등장하는데 중의 행색을 하고 있다. 옆에는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이 따라온다. 이 젊은 여자는 바야흐로 종놈들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판이다. 현대 소실이나 영화에서 보는 장면 제시적 수법을 연상케 한다.

 

거기서 시인이 무슨 영문인지 묻게 되어, 젊은 여자는 목이 메어 말을 못 하고 어머니가 대신 나서서 사정을 들려준다. 이후부터 끝까지 등장인물의 대사로만 엮인다. 시의 끝맺음 역시 마침 그 자리에 둘러섰던 사람들이 주인공의 운명에 대해 혀를 차면서 안타까워하는 말로 처리된다. 맨 처음 장면에서 인물을 인상 깊게 묘사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시인에 의한 직접적인 서술ㆍ묘사ㆍ설명이 생력되어 있다. 시인의 감회나 평설까지도 문면(文面)에서 완전히 제거하고 있다. 요컨대 전편을 극적인 전개방식으로 구성한 것이다.

 

 

둘째, 주제사상과 그 표출상의 특징

 

다산은 이 작품에서 무엇을 나타내고자 했는가? 위에서 지적한 대로 시인 자신의 의사는 전혀 표명되어 있지 않다. 대사 속에 잠재되어 있을 뿐이다. 대사에 의해서 인물의 형상화가 이루어지고 사건이 드러나므로, 그 인물 형상과 사건을 분석해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사건은 주인공이 소경에게 시집가는 데서 일어난다. 육신이 멀쩡한 여자가 불구자를 남편으로 만나는 거기에서 문제가 그치지 않는다. 신랑 명색이 앞을 못 보는 봉사에다 추한 몰골의 늙은이다.

 

 

소경은 이미 나이가 높아

칠칠에 사십구 마흔아홉이라오.

전에 벌써 두 번 초례를 치러

내 아이는 이제 세 번째 여자라.

초취에서 두딸을 낳고

재취에서 아들 하나를 얻어

사내자식도 이미 다 큰 아이요,

작은딸이 지금 스물세살이랍디다.

答瞽年已高 七七四十九 前已再成醮 兒乃第三婦

前婦産二女 後婦擧一男 男年已成童 少女今卄三 -1

 

 

한창 꽃처럼 피어난 18세기 소녀가 이런 환경 속에 시집이라고 가보니 자기보다 나이가 위인 전처 소생의 두 딸과 아들 녀석이 새엄마를 갖가지로 구박하고 모함해서 도저히 참고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늙은 소경마저 모진 학대를 가한다. 주인공 앞에 놓인 삶의 자리는 지옥보다 험악하고 철창보다 고달픈 곳이었다. 이 생지옥으로부터 탈출을 꾀한 것이 머리를 깎고 중이 되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 막다른 길마저도 이 가련한 여자에게는 허용되지 않고 관가로 붙들려가는 것이 현재의 지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을 행복하게 영위하고 보람있게 꾸미고자 한다.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소망이며 권리다. ‘소경에게 시집 간 여자에 대해서는 이러한 인간의 기본권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이 비극적인 운명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먼저 그 여자를 핍박한 자들의 행위와 성격을 따질 필요가 있다. 주동자는 늙은 소경이고 방조자는 친정아버지며 후원자는 강진 고을 원님이다. 늙은 소경이 자기의 부유한 재산을 미끼로 던져 유혹하자 아버지가 얼른 넘어간 것이다. 늙은 소경의 경우 부를 이용해서 한 여성의 인격을 빼앗고 짓밟았으며, 아버지의 경우 가장(家長)의 위취에서 자신의 물질적인 안락을 위해 딸의 인생을 희생시켰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부녀자의 행실 왜 그리 편협한고?

남편을 헌 버선짝처럼 팽개치다니

지금부턴 다시 머리를 기르고,

부부간에 금실 좋게 지어라.

女行何褊斜 棄夫如弊襪 自今長髮毛 復與調琴瑟 -10

 

 

원님이 내린 판결이다. “금실 좋게 지내어라라니 말은 그럴듯하다. 그렇지만 피고인이 기왕에 무슨 억울한 사정과 고통에 당했으며, 이 판결의 결과 그녀의 인생이 장차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여권(女權)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판결의 이론적 근거는 여성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윤리다. ‘예의로 살인을 한다는 말도 있거니와, 이 경우가 바로 여성 일반을 억압했던 윤리규범의 족쇄를 채워 가련한 여성을 다시 사지로 밀어넣은 꼴이다. 이처럼 원고 측에 절대로 유리하게 관권을 움직였던 내막에는 부의 힘이 작용했으리라는 것은 추축하기 어렵지 않다. 요컨대 비극은 기본적으로 빈부(貧富)의 모순에서 발단하였고 또 여성을 멸시하고 속박한 봉건윤리에 의해서 양성된 것이다.

 

시인은 소경에게 시집간 여자의 운명에 대해 연민의 정을 마음으로 느끼고, 그렇게 만든 사회적 모순과 예속(禮俗)의 잘못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바로 이 작품의 주제사상이다. 그런데 시인은 결코 자신의 목소리로 주장을 하지 않는다. 다만 대화의 수법을 운용해서 주인공의 인생을 제시할 뿐이다. 주제사상은 구체화된 형상 속에 잠재해 있다. 그래서 독자들이 연극을 감상하듯 주인공의 역경을 구체적으로 살펴서 이해하고 또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한 것이다.

 

 

셋째, 인물 형상의 대립과 전형성

 

혼인 비극으로 엮인 이 서사시에서 갈등의 축은 젊은 여자와 늙은 소경이 인연을 맺음에 있는데, 거기에 친정어머니와 아버지가 주요 인물로 역할을 맡는다. 이들은 각기 나름으로 성격을 지닌 생동하는 인물로 부각되어 있다. 주인공은 시의 서두에서 벌써 비상한 관심을 끌도록 인상적으로 등장하지만, 서사적 전개가 진행됨에 따라 개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이 여자는 지아비에 대해 무조건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도덕률을 거부한다. 이 측면에서는 확실히 저항적이다. 한편으로 어머니가 개가를 권유하자 받아들이지 않는다. 의식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뇌리에 개가란 금수의 행동으로 비쳐진 듯싶다. 어쨌건 그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여자의 도리를 거역하는 대신 신앙생활로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의 의지가 집요하고 강경함을 작품은 묘사하고 있다. 어머니가 딸의 진정을 생각해서 적극 만류할 때도 뿌리쳤거니와, 관권의 개입으로 붙잡혀 가서 시집살이의 지옥에 다시 갇혔을 때도 용감히 탈출했던 것이다. 봉건 예속의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운 삶의 길을 모색하였지만, 어떤 진취적인 진로를 개척하지 못하고, 기껏 종교 신앙에 안주하려 했다. (그것마저 차단당했지만) 이 여자의 형상에서 우리는 고결한 인격을 실현하려는 여성의 한 시대적 전형을 마주한다.

 

소경은 이 여자와 반대되는 면모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젊음과 늙음, 아름다움과 추함, 청초함과 비루함으로 상반되어, 도저히 한 쌍의 짝으로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생활관습에서도 소경은 때때로 무슨 일이 났다 하면 급급히 산통을 흔들어대며[時來怪事發 急急搖籤筒]” 점을 치는데, 그 꼴이 여자에게는 역겹게 느껴진다. ‘소경에게 시집간 여자의 운명은 사실 특수한 사례에 속하는 것이다. 소재상에서 보편성을 결여한 것처럼 보이는데, 갈등의 축에 놓인 두 인물을 이같이 대립적으로 형상화시킴으로써 보편적 의미와 함께 전형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여자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 두 인물은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아버지의 경우 부에 현혹된 나머지, 신랑감이 두 눈이 먼 사람임을 뻔히 알고도 다만 좀 안 된 건 한짝 눈이 짜긋하나 얼굴은 한창 젊은 사람이라대[所嗟眇一目 顔色乃嬋媛]”라고 거짓말을 하여 혼담을 이루도록 하며, 뒤에 신랑의 정체가 드러나자 아내에게 나 역시 남의 속임을 당했으니 임자는 나를 보고 원망할 것 없네 (……) 사람의 기수란 하늘이 정해준 걸 화복의 엇갈림 그 누가 알겠냐[我自受人欺 卿無我怨望 (……) 命𡢺有天定 倚伏詳能詳].”라고 얼레발을 치고 되지 못한 운명론을 끌어다 기어이 결혼을 시키고 마는 것이다.

 

반면에 어머니 쪽은 딸의 운명에 대해서 마냥 서러워하고 안타까워한다. 중이 된 딸이 옷가지와 잘라낸 머리털을 친정으로 보내는 장면이 있다. 이때 어머니는 그것을 끌어안고 소경의 집으로 달려가서 싹뚝 잘려진 이 한줌의 머리칼 바로 우리 아이의 구름결 같던 머리라네[鬅鬙一掬髮 是兒如雲髮].”라고 한가한다. 그로 인해 딸은 종적이 탄로나서 붙잡혀오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머니가 공연히 주책을 떨어서 딸을 곤경에 빠뜨린 꼴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머니의 무분별한 처사를 탓하면서도 오죽이나 절통(切痛)했으면 그랬겠느냐고 동정심이 일어난다.

 

소경에게 시집간 여자의 친정집은 가난하고 무지를 면키 어려웠던 우리네 서민 가정의 전형이다. 작중에 전개된 내용 역시 서민생활의 비극으로서 전형성을 띠고 있거니와, 여자의 아버지는 가난과 무지 때문에 왜곡된 구시대 가부장의 형상으로, 어머니는 가부장의 권위에 눌려 지내면서 자식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쏟는(약간은 무분별하지만) 모정의 형상으로 묘사되어 있다.

 

 

넷째, 표현상의 몇 가지 특징

 

위에서는 대개 작품의 골격과 전반에 걸친 사항을 검토했는데, 이제 언어표현의 수법에 속하는 세절(細節)에서 발견되는 특징들을 열거해본다.

 

사건이나 정황의 묘사가 생생하게 되어 있는 점

혼례를 치르던 날 신랑 행차가 신부집에 당도했을 때의 장면을 보자.

 

 

동리사람들 눈이 휘둥그레 서로 둘러보고

가까운 손들 낙심해서 도로 마루에 오르고

이모님들 차마 못 봐 달아나더라

里人瞠相顧 親賓還上堂 諸姨走且匿() 阿母涕滂滂 -5

 

 

신랑의 의외의 생김새에 놀라 일으키는 반응이 이처럼 친소 관계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남을 포착해 그려서, 우리가 그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 가령 청순한 여성이 음흉한 늙은이에게 유린당하는 첫날 밤의 상황은 신방에서 소곤소곤 소린 들리질 않고 한바탕 요동치는 소리뿐일러라[不聞耳語聲 但聞鬨一場].”라고 간결하게 처리한다. 그 여자의 곤욕스러운 몸부림이 아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 표현이 생생하게 구사되어 결국 작품의 형상성을 높이고 있다.

 

여러 가지 풍속도를 그려낸 점

혼수 마련, 신랑이 장가들러 가는 행렬, 소경이 점치는 모습, 중이 되는 절차 등의 대목을 보면 자못 상세하게 묘사해서 마치 김홍도의 풍속도를 펼친 듯싶다. 이런 부분은 주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작품 내용을 생활과 밀착시켜 풍부하게 해주고 조선적 정조를 살리는 효과도 있는 것이다.

 

시어가 천근(淺近)하면서도 비속하지 않고 사설이 장황하면서도 산란(散亂)하지 않은 점

당초 한시 형식 때문에 일상 구어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시구를 평이하게 엮어나가면서 천근한 생활어를 대폭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대목에서는 판소리 사설이 그렇듯 장황하게 나열되고 어떤 구절들은 사설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 비사실과 과장을 조금 끼워넣기까지 했다. 그런데 천근하면서 심원한 뜻이 있고 장황하면서도 간결한 멋이 있다. 이 점은 작품의 특이한 표현미학이라고 여겨진다.

 

서정성이 함축된 점

이 작품은 당연히 서사를 위주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서사적 과정 속에 정감이 스며 있어 경우에 따라선 서정성이 강렬해지기도 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서술방법과 관련이 있다. 작품상에서 진술자는 시인이 아니고 주인공의 어머니다. 모정의 형상인 어머니가 딸의 기막힌 사정을 들려주는 것이다. 이야기는 저절로 회한이 서리고 눈물이 섞이기 마련이다. 특히 운명의 고비인 여자가 신방에 들어가게 되는 혼인날 저녁이나 보림사의 암자에서 어느 여승의 딸의 소식을 가져온 장면 같은 데서는 서정적인 표현이 고조되고 있다. 시인도 작중에서 다른 청자들과 함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주인공의 인생을 알게 된다. 그 이야기를 점점 들어감에 따라 감동하여 연민의 정까지 생겨나게 된다. 서사와 서정을 교묘한 수법으로 결합시켜 심대하고 독특한 효과를 거두었다고 하겠다.

 

 

 

3. 목도한 내용을 담은 현실주의 인식

 

 

작품은 앞에 짤막한 머리말을 붙이고 있다. 작가의 자서인 것이다. 그 머리말에서 작가가 분명히 밝힌바, 작품은 실재 사실에서 취재하였는데, 양승암(楊升庵)한단재인(邯鄲才人) - 마부의 아낙이 된 여자라는 시로부터 창작과정에 촉발을 받았다는 것이다. 작품의 소재와 관련된 특수성을 검토해보아야겠으며, 양승암의 그 시에 대해서도 한번은 짚고 가야겠다.

 

양승암의 시는 중국의 전국시대 고사에서 취재한 것이다. () 나라 왕이 연() 나라에 포로로 잡힌 것을 일개 마부가 기발한 변설로 구출해와서, 그 마부는 궁중의 일등 미녀를 아내로 맞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 고사는 원래 사기(史記)』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에 끼여 있다한단재인(邯鄲才人) - 마부의 아낙이 된 여자는 고악부에 제목만 보이고, 그 가사는 전하지 않던 것인데 양승암이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의 사실을 가지고 재구성한 것이다.. 다산의 도강고가부사(道康瞽家婦詞)를 양승암의 시와 대조해보면 우선 작품의 서두에 시경(詩經)에서부터 개발된 흥()의 수법을 이용한 점이 서로 일치하고 시구를 엮어간 방식도 상당히 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측면에서 커다란 차이가 드러난다. 양승암의 시는 당대의 현실이 아니라 아득한 상고에서 소재를 끌어오고 내용에도 민중성을 담지 못하고 있다. 양승암으로부터 다산이 배운 바는 무엇보다 여강소부행(廬江少婦行)(=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을 본받으려 한 그 태도에 있지 않았던가 싶다.

 

다산시의 특색은 바로 목전에서 발생한 사건을 작품화한 데서 드러난다. 작가의 창작동기는 스스로 고백하였듯 자기가 목도한 일에 남다른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곧 사건에 인연해서 인생의 애환을 느끼고 장편의 시를 쓴 것이다. 이야말로 고전적인 악부시에서 보는 애환에 느끼고 사실에 의거해서 표출한다[感于哀樂 緣事而發]”라는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제의 사건을 취급하는 작가의 시점에 주의하자.

 

시인이 사건을 목도한 현장이 곧 시의 현장이다. 서술자는 물론 사건 현장을 포착한 시인이다. 이미 지적한 대로 작품은 시인과 작중 주인공의 어머니와의 대화로 엮이는데, 차츰 어머니의 진술이 곧 시인의 진술처럼 생각되기에 이른다. 사실상 어머니의 진술에 의해 사건이 전개되므로 어머니의 시점은 시의 시점으로 일치된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시인과 어머니 사이에 점점 정서적 동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는 현장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에게까지 마음의 동화현상이 확대됨을 보여주고 있다.

 

이 경우 시인은 서민과 정감적으로 합일된 상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백성을 가르치려는 설교문학의 방향이나 백성의 처지를 걱정하는 입장에서 이념을 내세우는 목적문학의 방향으로 나갈 수 없다. 앞에서 살펴본바, 작품의 여러 예술상의 특징은 이런 작가적인 자세의 반영일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다산이 처음 서사시 문학을 시도한 것은 아니다. 다산 이전에도 서사시적인 작품이 종종 발견되며, 그중에 여성 문제를 다룬 것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작품만큼 밀도 높게 사회성이 부여되어 있고 또한 그 주제를 구도덕(舊道德: 예컨대 정절이니 열녀니 하는 등)과 차원을 달리해서 심화시킨 사례는 썩 찾아보기 어려운 듯하다. 그리고 주제 표출상에서 시인이 주관적ㆍ설교적 개입을 끝까지 자제하고 풍부한 현실내용을 삽입해서 서사시로서 완결이 되고 고도의 예술적인 성과를 거둔 경우 또한 흔치 않을 듯하다. 이는 현실주의에 의해서 추구된 경지다. 우리는 이 도강고가부사(道康瞽家婦詞)를 통해서 다산시의 현실주의를 재인식한다.

 

 

 

 

4. 여유당전서가 아닌 한객건연집에 실린 이유

 

 

나는 이 자료를 한 필사본 책에서 발견하였다. 겉에 사대사(四大家)’라 씌어 있는 내표제는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이라 했다. 이 책은 연암의 제자로 나란히 문명(文名)을 날리던 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박제가(朴齊家)의 시 모음인데 이미 간행되어 널리 보급되었으며, 필사본도 더러 눈에 띄는 것이다. 그런데 끝에 부록으로서 남상교(南尙敎)ㆍ이학규(李學逵)ㆍ이가환(李家煥)ㆍ이용휴(李用休)의 시 한두 편과 함께 마지막 몇 장에다 정약용의 도강고가부사(道康瞽家婦詞)라는 제목의 장시가 씌어 있었다. 이 부록에 다산과 함께 들어간 다섯 분은 기호지방(畿湖地方) 남인 계열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이 책을 베껴서 꾸민 사람이 누군지 알아볼 길은 없으나 추측건대 역시 기호 남인계의 후예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교분을 통해 자료를 입수하여 한때 식자들 사이에 유행했던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을 필사하면서 끝에 적어 놓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의 시문집 가운데에는 빠져 있다. 그런데 이동환 교수가 소장한 책자 속에서 또 발견된다. 그 책자 역시 필사본으로 모두 다산의 시를 베껴놓은 것이라 한다. 작품의 필치라든지 여러 가지 자료적 정황으로 미루어 다산작이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을 지은 때는 언제일까? 작가 자신이 가경(嘉慶) 계해(癸亥), 곧 순조 3년인 1803년에 작중의 사실을 보았노라고 언급해놓았다. 이 연대는 작중의 사건이 실제로 발생한 때다. 창작연대는 그 후가 될 것이다. 확증이 없기 때문에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1803년으로부터 그리 먼 시기는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대개 그 해 아니면 그 이듬해를 벗어나지 않았을 것 같다. 1803년에는 애절양(哀絶陽), 다음 1804년에는 하일대주(夏日對酒)를 쓴다. 이 어름에 짓지 않았을까 보는 것이다.

 

어떤 연유로 이 작품이 다산의 정리된 시문집 가운데에서 빠졌을까? 이 역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현재 남아 있는 다산시 자료가 제대로 정리된 상태가 아님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연대적으로 살펴보면 1811년부터 8, 9년 사이에는 시작품이 홀랑 빠졌다. 이 시기의 시들은 분명히 망실되었을 것이다. 1803~4년 상에도 실린 작품이 평소 그의 시 생산량에 견주어볼 때 아주 적은 편이다. 다산의 시인으로서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현재 남겨진 자료로서는 완전치 못하다. 다산시 자료의 발굴에 유의해야겠다는 점을 이 자리를 빌려 제언한다.

 

나는 근래 우리의 문화유산 가운데에서 특히 서사시 문학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다산의 이 작품을 처음 대하자 더욱 흥미를 가졌음이 물론이다. 나는 작품을 널리 공유하는 뜻에서 감히 번역을 하여 소개하거니와, 혹시 오역이나 이해의 잘못이 보이면 바로 잡아주시기 바란다. 끝으로 이동환 교수가 아끼던 자료를 한부 복사해주어서 필자가 가진 작품에 결손이 있는 부분을 보충했음을 밝힌다.

 

 

 

 

인용

목차 / 논문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