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컨셉이 ‘민폐 끼치기’라고?
이미 말했듯이 오늘 목표는 익산을 지나서 시간이 될 때까지 걸은 만큼만 가는 거다. 지금껏 일주일동안 걸었지만 어떻게든 도시 중심지를 목표로 하루 걸을 양을 정해왔다. 도시를 목적지로 정한 이유는 아무래도 잘 곳을 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물론 여관이나 찜질방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 생각이 여행의 의미를 반감시키고 있었다. 잘 곳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경험도 못해봤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해보지도 못했는데, 그건 이처럼 안전한 여행만을 하려는 소심함 때문이었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기 위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떠났지만, 어느덧 그 의미는 사라지고 걷는 것에만 치중하는 극기(克己)를 위한 여행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여행의 형태를 계속 고수하는 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런 생각들을 쉴 새 없이 하며 만경강을 지나가고 있었다.
치대기와 민폐 끼치기
바로 그때 갑자기 함열에 산다던 후배가 생각났다. 대학교 때 크로스 선교 합창단이란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며 알게 된 후배다. 아무래도 일주일에 두 번 진행되는 합창 연습 시간과 예수병원으로 나가는 찬양 봉사활동까지 함께 하노라면, 동아리 아이들과는 정말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한참이나 연락을 하지도 않았지만, 한번 연락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익산을 지나고 있다는 문자를 보냈다. 분명히 처음에 문자를 보낼 때만 해도 ‘안부만 물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문자를 주고받다 보니 ‘한번 교회에서 자도 되는지 물어볼까?’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라. 뭐 이번 주 여행의 컨셉이 ‘치대기 & 민폐 끼치기’이니, 실례가 되는 줄은 뻔히 알지만 보내보기로 했다. 잘 된다면 모처럼 후배도 만나볼 수 있고 그에 따라 자는 문제도 한 큐에 해결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문자를 보내고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문자가 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심장은 두근 반, 세근 반 하게 되더라. 가능하다는 문자가 오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 또한 용기이니, 이런 식으로 용기를 낸 나에게 박수를 보내며 말이다.
그러다 결국 문자가 왔다. 시간상으론 몇 분 정도만 흘렀을 뿐인데, 몇 시간을 보낸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역시나 시간은 상대적이다. 과연 어떤 내용일까? 걱정과 기대를 하며 문자를 확인해 보니, 다행히도 “괜찮을 것 같아요”라는 문자더라. 히야~ 오늘 억세게 운이 좋다.
인간이어라 그대여
이번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누군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간다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엄마와 같이 놀 때 혼자 재밌게 놀다가도 한 번씩 엄마가 있는 쪽을 쳐다본다고 한다. 엄마가 그 자리에 있는지 그리고 자신을 보는지 확인해야지만, 맘 편안하게 놀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처럼 사람은 근원적으로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하는 존재다. 그래서 사람을 한자로 표현하면, 그저 ‘인(人)’이라고만 써도 될 것을 굳이 ‘인간(人間)’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은 존재와 존재 사이에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이 되는 거다. 그러니 아무리 홀로 살아가는 존재라 착각할지라도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하며, 그런 위안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자기 안으로만 침잠(沈潛)해 들어가 자신을 파괴하는 자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오늘은 오전부터 지금까지 사람과 어우러질 수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행복할 수밖에. 이게 바로 관계의 끈을 확인한 데서 오는 행복이라 할 수 있다. 나 혼자 떠난 여행을 통해 나 자신과 어느 정도 화해할 수 있었고 그 힘으로 세상과 사람을 향해 맘을 열 수 있었다.
전속력으로 익산 통과하기
그런데 일이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진행되는 바람에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이미 시간은 2시가 넘었고 이제 막 익산에 들어섰다는 거다. 여기서 함열까진 25km를 더 가야 한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한 시간에 1리(4km)를 걸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 단순한 계산법으로 계산하더라도 6시간을 더 걸어야 겨우 함열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오후에 접어들면서 몸은 지쳐가고 있었으니 그 시간은 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허걱! 이건 완전히 판단 미스다. 이래서 어떤 일이든 ‘+’와 ‘-’가 함께 있다고 하는 건가? 이제부턴 ‘적당히’ 걸어선 안 된다. 아주 맹렬히, 전투적으로 걸어야만 한다.
정말 빠른 속도로 걸어서 익산 시내를 관통하기 시작했다. 그때만해도 발바닥도 양호했고 몸도 많이 힘들진 않았다. 그래서 익산역에서 컨셉 사진도 찍고 원광대 앞에선 잠시 구경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ㅋ 황등을 지나 함열로 향하는 23번 국도를 탈 때부터 발바닥이 조금씩 아파왔다. 아직도 꽤 걸어야 했기에 양말을 갈아 신었다. 지금껏 아침에 신은 양말을 중간에 갈아 신은 경우는 없었다. 오늘처럼 완벽하게 무리하며 걸은 경험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오전엔 쉬엄쉬엄 걷다가 오후에 무리하며 걷는 것이기에, 땀에 젖은 양말을 갈아 신어 발바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해야만 했다.
도무지 거리 감각이 없었던 지라 무작정 걸었다. 4차선 국도의 횡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힘내서 걸었다. 함열에 거의 다 왔는가 싶으면 또 새로운 길이 나오고 그게 계속 되풀이 되더라.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길은 끝이 없는 듯 계속 되어 맘은 조급해져만 갔다. ‘그만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나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럴 때가 고비이긴 한데,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겨낼 수밖에 없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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