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만난 사람
걷다가 7시가 넘어서야 함열에 도착했다. 최대한 빨리 걸은 탓에 조금 일찍 함열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후배는 “길을 오다 보면 오른쪽에 석매교회가 보일 거예요. 그러면 연락을 주세요”라고 말해줬기에, 걷는 내내 석매교회를 찾으려 무진장 노력했다. 그런데 함열에 다 도착했는데도, 석매교회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함열 가기 전에 교회가 있는 게 아니라 읍내에 있는 교회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읍내에 들어가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그런 교회는 없었다.
‘의미요법’을 몸소 체험하다
후배에게 전화를 해보니, 이미 지나쳤다고 알려주더라. 세상에 내가 얼마나 온 신경을 집중하고 찾으면서 왔는데, 그걸 어찌 놓쳤을까. 나중에 알고 보니, 도로에 바짝 붙어 있지 않고 약간 떨어져 있었던 거다. 그래서 환한 대낮에 왔다면 충분히 볼 수 있었을 텐데, 어두워진 저녁에 오다보니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게 바로 대략난감이다. 무리하며 걷기도 했고, 교회를 찾는다고 한참이나 읍내를 걸어 다녔기에 체력은 완전히 바닥이 난 상황이었다. 후배의 말에 기진맥진하여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래서 사람에게 ‘희망’이 중요하다고 하나 보다. 빅터 프랭클(Victor E. Frankl) 박사의 ‘의미요법(Logotherapy)’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희망이 있을 땐 저력이 생기더니, 그 희망이 사라지자 서있는 것조차 힘들었으니 말이다. 만약 후배가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서 오세요”라고 말을 했다면, 나는 “그냥 여기서 잘 곳을 알아볼게”라고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만큼 움직일 힘이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후배는 차가 있기에 태우러 온다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언제 절망에 빠졌나 싶게 얼굴이 화색이 감돌며 밝아졌다~
곧 후배가 왔다. 차에 타자마자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고 이런 몰골로 만나게 되어 좀 미안하다고 말을 건넸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라도 만날 수 있으니 기분은 정말 좋았다. 이제 하루의 무거운 짐을 놓고 푹 쉬면 되니 말이다. 오늘은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계획이 생기며 무리를 하게 됐다.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이렇게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다.
건빵이 만난 사람④: 예기치 못한 상황의 결정판
교회에 짐을 놓고 후배가 밥을 산다고 해서 길을 나섰다. 난 돈가스를 먹고 후배는 이미 밥을 먹었다며 녹차를 시켰다. 몇 년 만인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꼭 꿈만 같은 느낌이었다.
후배는 내가 동아리 단장을 맡고 있던 시절에 새내기로 입학했었다. 그렇게 1년 동안 동아리에 최선을 다하다가 단장직을 넘겨준 후엔 임용공부만 한다는 핑계로 아예 동아리엔 발길을 끊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의 관계는 흐지부지 될 수밖에 없었다. 그새 시간이 흘러서 벌써 이 아이도 졸업을 했다는 거다. 꿈도 여전히 많았고 생각하는 것들도 많아서 우린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었다.
밥을 먹고 다시 교회로 왔다. 문자로 이야기할 땐 기도실이나 작은 방에서 혼자 자는 것으로 이야기가 됐었다. 혼자 자는 거야 이미 이골이 났기 때문에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교회에 도착하니 아까와는 다른 말을 하더라. 전도사님이 머무는 곳에서 같이 자야 한다고 말이다.
솔직히 그 말을 들었을 때도 난 대환영이었다. 전도사님이면 오랜만에 종교에 대한 생각을 들어볼 수 있겠구나 했기 때문이다. 젊으니 종교관도 통통 튈 것이고 그런 만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거니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후배가 한마디 덧붙인다. 바로 그 전도사님이 외국인이라는 것이다.
이미 이것만으로 ‘충격’의 도가니탕인데 이쯤에서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 그래도 한국에 전도사님으로 오실 정도면 한국말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전도사님은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하신다는 거다. 뭐 이 정도는 되어야 ‘예기치 못한 상황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나 지금 진땀 흘리고 있니~ 솔직히 그 순간 혼자 자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새 환경에 맞서기로 맘먹은 날에 바로 그 다짐을 깨긴 싫었기에 잠자코 상황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건빵이 만난 사람④: 필리핀 전도사님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다
전도사님이 계신 방으로 들어가니 이미 사모님과 따님이 전도사님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계시더라. 난 바로 자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조금 후에 교회 식구들이 2명 더 와서 화기애매(?)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솔직히 모두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데 난 낄 수가 없었다. 알파벳도 보지 않고 산 지 몇 년이 흘렀으니 영어를 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비교적 쉬운 단어로 이야기하는 데도 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어야만 했다. 아~ 영어가 오랜만에 나에게 도전심을 심어주는 구나.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다 가고 난 다음엔 나와 전도사님만 방에 남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되면 우린 등을 돌리고 어색하게 잠을 자는 척하게 될지도 모른다. 애고~ 어떻게든 이런 예기치 못한 상황을 잘 보내야 할 텐데~~
결국 모든 사람들이 가고야 말았다. 정말로 아무 이야기 없이 어색하게 등을 돌리고 잤을까? 아니면 나름대로 재밌는 시간을 보냈을까?
이런 어색함을 몸소 느끼려 여행을 했다지만 외국인과 한 방에서 자게 될 줄이야~ 내가 그렇게 꿈꾸던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닥치고 만 것이니, 인생 참 기가 막힐 정도로 신기하다.
잠시 어색했다. 그래서 생각나는 몇 개의 단어를 나열하고 전세계 공용어인 바디랭귀지를 ‘기똥차게’ 섞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간혹 말이 통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말이 통하지 않아 둘이 먼 산만 바라보았다. 전도사님의 말을 난 바짝 긴장하며 들었는데, 내 짧은 영어 실력 탓에 그것마저 제대로 해석이 안 되었다. 오 마이 갓뜨!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란 ‘OK!’ 밖에 없었다. 이 궁색한 대답이여~ 사람이 옆에 있음에도 답답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보니 어느 정도 전도사님에 대해서 알겠더라. 전도사님의 이름은 ‘Wilter Cortez’ 이며 나이는 25살이란다, 그리고 필리핀 출신이며 성결제단에서 필리핀에 선교학교를 세웠는데 그 학교를 졸업하여 한국에 실습(?)하러 왔다는 것이다. 왜 기독교를 믿게 됐는지 그게 궁금했지만, 짧은 영어 실력으로 물을 순 없었다. 어느 정도 개인 상황을 알게 되니까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고 사진을 찍은 후엔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누가 보면 사진 찍으려고 친해진 줄 알겠다^^
이것이야말로 예기치 못한 만남이다. 비록 제대로 이야기해보진 못했지만 외국인과 이야기를 나눈 내 생애 최초의 기념비적인 사건임엔 틀림없다. 나도 조금씩 언어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간단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는 익혀야겠단 생각을 하며 잠을 청했다.
지출내역
내용 |
금액 |
헌금 |
1.000원 |
총합 |
1.000원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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