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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국토종단 - 56. 초평면에서 잠자리 구하기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09년 국토종단 - 56. 초평면에서 잠자리 구하기

건방진방랑자 2021. 2. 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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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평면에서 잠자리 구하기

 

 

저수지는 매우 넓었고 그 위에 집을 띄워 놓고 낚시질하는 강태공들이 많았다. 그때부터 내 마음은 더욱 바빠졌다.

 

 

▲ 넓은 초평저수지. 그만큼 많은 좌대가 보인다.

 

 

 

늦은 저녁까지 계속된 국토종단

 

이미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다. 차는 헤드라이트를 켜고 운행할 정도로 금세 어두워졌다. 밤 국토종단은 위험해서 되도록 자제해 오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쩔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전속력으로 걸었다. 익산 함열에 갈 때도 이와 같은 경우였기에 그 다음날 무진장 고생했던 안 좋은 기억이 생각나더라. 하지만 어쩌랴? 이렇게라도 서둘러 가지 않으면 도로 한복판에서 밤을 새야 한다. 거의 8시가 되었을 때 드디어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어딜 봐도 십자가는 보이지 않더라. 그때의 절망감이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최악의 기분이었다.

 

 

▲ 지금은 새도로가 뚫렸지만, 그땐 구도로여서 한참을 걷고 또 걸어야 했다.

 

 

 

교회는 찾았으나 잠자리를 얻지 못하다

 

그런데 한 코너를 돌자 홀연 빨간 십자가 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난 엉겁결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무 것도 없을까봐 걱정을 한가득 했던 터라 빨간 십자가만 봐도 영원의 안식을 얻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학자인 연암 박지원은 드넓은 요동벌판을 보고 한번 울어재낄 만 하다고 울만한 곳에 대한 이야기(好哭場論)’를 펼쳤다지만 난 십자가를 보고 감격에 겨운 나머지 한바탕 울어젖히고 싶었다.

그때부터 힘껏 걸어 교회에 도착했다. 이젠 목사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기만 하면 된다.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저녁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바로 허락해주실 줄 알았다. 그런데 난처한 표정을 지으시더라. 교회가 꽤 커서 작은 방들이 있을 법한데도 잘 곳이 없다며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하신다. 이미 이와 유사한 경험을 꽤 많이 했기에 이런 상황에선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피차 난처해지기 때문이다. 그때 목사님은 근처에 다른 교회가 있다며 소개해주시더라. 그러면서 그 교회엔 방들이 많아서 자는 데엔 문제가 없을 거예요라는 말씀을 덧붙여 주셨다.

어찌 되었든 이 작은 마을에 교회가 두 군데나 있다는 건 희망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하나 남은 희망이라도 부여잡고자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보니 파출소까지 있더라. ‘만약 그 교회까지 안 된다고 할 경우 저 파출소에 들어가 무작정 부탁해봐야겠다는 방안까지 생각해뒀다. 한비야씨도 이와 같은 상황에선 경찰에게 얘기하여 숙직실에서 잔 경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후의 수단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이번 교회에선 꼭 허락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 그땐 어두워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 이건 다음뷰의 사진. 저 멀리 빨간 첨탑이 보이는 순간, 기쁨의 비명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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