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르기 전까지는 끝을 알 수 없다
시간은 어느덧 4시가 넘어가고 있는데 난 여전히 오봉산을 오르고 있다. ‘오늘 이러다 산 한 가운데서 노숙하게 되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더라. 만약 정말 그런 상황이 된다면 ‘오는 차를 잡아서 마을까지만 데려다주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다르기 전까지는 끝을 알 수 없다
서서히 시간은 흐르고 끝은 보이지 않고 불안이 엄습해 온다. 비도 거의 그친 분위기라 비옷을 벗고 배낭의 방수커버도 벗겼다. 그제야 시원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우의는 방풍효과 때문에 걸으면 걸을수록 습해지고 체온은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 그때 시원한 공기를 온몸으로 맞으니 생기가 돌더라.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강원도이고 여긴 산 중턱이란 거다. 그만큼 기상 변화가 잦다는 거. 그렇게 무장해제하고 걷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거다. 우의를 벗은 지 5분 만에 당하는 ‘날씨의 기습’이다. 길 한복판에서 비를 맞으며 우의를 꺼내 입고 방수커버를 씌우는 생쇼를 해야만 했다. 이건 솔직히 군대에서 하던 준비태세보다 더 행동이 민첩하고 빨랐다. 나에게 이런 날렵함이^^ 날씨도 오락가락하고 산 정상은 아직도 먼 것 같고, 내 여행 최대의 위기 상황이다. 이런 때 생각을 많이 해서 스스로 불안의 늪으로 밀어 넣을 필욘 없다. 무작정 걷고 또 걷는 게 최고의 방책이다.
그렇게 몇 분 걷지 않았는데 갑자기 ‘정상’이란 팻말과 ‘화천군’이란 팻말이 나오더라. 한 순간에 그런 것들이 보이니까 처음엔 긴가민가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내가 불안을 느끼던 곳은 정상을 바로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는 거다. 근처까지 왔으면서도 끝을 알 수 없었기에 그로 인해 불안했을 뿐이다.
이때 떠오르는 구절이 있었다.
산을 만드는 것에 비유하자면 한 삼태기를 더 보태면 산이 되는데도 그걸 하지 못해 그치는 것도 내가 그치는 것이며,
구덩이를 메워 평지를 만드는 것에 비유하자면 비록 한 삼태기를 채워나가는 작은 일이라도 시나브로 해나가는 것도 내가 해나가는 것이다. 『논어(論語)』 「자한(子罕)」 18
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
이 구절은 두고두고 읽으며 좋아했던 구절이다. 산을 만들 때 한 삼태기의 흙만 보태면 산이 된다는 것을 안다면, 즉 99% 완성된 상황에서 일을 그만두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완성이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어느 순간에 그게 이를지 모르기 때문에 지치거나,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포기할 수도 있다. 그게 겨우 1%를 채우지 못하여 그만두었다 할지라도 99% 했다는 사실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결국 완성 짓지 못한 그 사실에 대한 회한을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와 반대로 구덩이를 메워 길을 만들 때 그게 지난한 일일지라도 구덩이에 한 바구니의 흙을 메워 나가는 노력이 있다면, 인정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작은 노력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큰 것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위의 두 가지 예를 통해 공자는 시작하려는 마음의 소중함에 대해, 어떤 일을 마무리 지으려는 치열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상에 거의 이르렀으면서도 거기가 정상인 줄 모르는 상황에선 불안에 휩싸이기 쉽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해진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 바로 끈기이며 저력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의 경험을 통해 평상시에 읽던 위의 문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오봉산 정상이 가르쳐준 ‘불안’에 대한 가르침
여행이란 게 불안의 연속이라곤 하지만, 정상에 다다르기 전에 느낀 그 불안은 ‘내 스스로가 만든 불안’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런데 그런 불안이 꼭 여행을 할 때만 하게 되는 걸까? 일상생활을 할 땐 그런 불안이 없을까? 누군가가 퍼뜨린 ‘미래에 대한 불안’, ‘자기 집을 갖지 못할 거라는 불안’, ‘낙오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내 스스로 만든 불안’이진 않을까? 불안이란 게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닌 ‘내 스스로 만든 불안’이라 한다면, 그걸 벗어날 수 있는 것도 결국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게 아닐까. 그런 불안에 저당 잡혀, 현재를 살얼음판을 걷듯 살 것인가? 불안을 걷어내 현재를 긍정하며 살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건 자신의 역량이리라. 오봉산 정상은 나에게 ‘불안의 속성’을 가르쳐 줬다.
내리막길은 훨씬 편했다. 저 멀리 해가 비치는 농토를 보니 내 기분도 덩달아 상쾌해지더라. 비가 그치고 구름도 밀려나니 해가 반갑게 얼굴을 내민다. 이렇게 기분이 순식간에 180도 바뀔 줄이야. 바로 몇 분 전만 해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오를 땐 두려움과 걱정으로 지옥을 맛보았고 내려올 땐 희망과 기쁨으로 천국을 맛보고 있었다. 한 순간에 다른 세상으로 온 것처럼 세상은 바뀌어 있었고, 내 기분도 바뀌어 있더라. 이래서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른다’고 하는 걸 테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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