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실패할 수 없는 삶이 두렵다
제가 마흔둘이 된 지금, 지금 나이의 절반인 스물한 살 졸업식 당시를 되돌아보는 것이 그리 달갑지는 않습니다. 21년 전 저는 제가 품고 있는 야망과 제 가족들이 저에 대해 갖고 있는 기대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부모의 기대와 달리 스스로 인생의 운전대를 쥐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오로지 소설을 쓰는 것뿐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신 제 부모님께서는 제가 갖고 있는 지나친 상상력은 흥미롭고 독특하기는 하나, 주택융자금을 갚고 노후 연금을 모으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여기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직업학교에 가기를 원하셨고, 저는 영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저는 현대 언어를 전공한다는 절충안을 찾았는데, 이제 돌이켜보니 그 절충안은 부모님이나 저나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 해결책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학교에 저를 데려다주시고 자동차가 학교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기가 무섭게 저는 독일어를 포기하고 고전 문학부로 달려갔습니다. 제가 부모님께 고전을 공부한다고 말씀드린 기억은 없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아마 제 졸업식 날 그 사실을 알게 되셨을 겁니다.
부모님께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 가운데 대기업 중역이 되는 데 있어서 그리스 신화보다 더 무용지물인 것은 없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부모님을 조금도 원망하거나 비난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 인생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게 된 것이 부모님 탓이라고 원망하는 태도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버려야 합니다. 자기 인생의 운전대를 스스로 잡는 순간 어느 방향으로 갈 지는 자신이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해 본인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제 부모님께서는 제가 가난으로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셨을 뿐인데, 제가 부모님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도 저도 가난을 겪었고, 가난이라는 것이 그리 달가운 경험은 아니라는 데에 저도 부모님과 동의합니다. 가난하면 삶이 두렵고 버거워지며 때때로 심한 우울증을 느끼게 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가난에서 헤어 나오는 것, 그것은 진정 자랑스러워 할 만한 일이지만 가난 자체를 낭만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기만의 실패를 규정하라
제가 여러분 나이에 가장 두려워한 것은 가난이 아니라 실패였습니다.
여러분 나이에 저는 학교강의는 거의 출석하지 않고 커피집에 죽치고 앉아 소설을 썼습니다. 저는 학교공부를 등한시했지만 시험을 통과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고, 몇 년 동안 저와 제 친구들은 시험을 통과하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처럼 젊고 재능 있고 제대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어려움이나 가슴 아픈 일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제가 아둔하지는 않습니다. 재능과 지적 능력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변덕스러운 운명의 여신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아무 어려움 없이 순탄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왔다고는 한순간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버드를 졸업한다는 사실에서 저는 여러분이 실패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 못지않게 여러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요인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일 것입니다. 최고의 평판을 지닌 대학에서 공부한 여러분이 실패라고 여기는 것을 보통사람들은 성공이라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결국 무엇이 실패인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실패가 무엇인지를 규정짓지 않으면 세상이 만들어놓은 성공과 실패의 기준에 좌지우지됩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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