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소통의 완수 여부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이에 비해 인시란 타자에 따르는 판단이나 사유를 의미한다. 그것은 어떤 제3자, 일반자의 매개를 거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처하고 있는 사태나 타자의 고유성 및 단독성(이 경우에는 원숭이들)에 근거하는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원숭이 키우는 사람과 원숭이들 사이의 소통은 기본적으로 원숭이 키우는 사람 쪽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에의 의지를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왜 비인칭적 주체가 인칭적 주체와 소통하려고 하는지 되물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인칭적 주체도 어차피 비인칭적 주체가 조우할 수밖에 없는 타자라는 점을 이해하면 우리는 쉽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식량이 떨어져 이제 불가피하게 식량을 줄일 수밖에 없었던 원숭이 키우는 사람은 원숭이를 키우지 않고서는 삶을 영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그라고 해서 자신이 키우는 원숭이에게 많은 도토리를 주고 싶지 않았겠는가? 단지 자신의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전제 하에서 조삼모사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그래야 이 이야기에서 장자가 의도했던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조삼모사 이야기에서 원숭이들은 시비 판단이라는 지적인 작용과 희노(喜怒)라는 감정적인 작용을 하는 인칭적 주체를 상징하고 있다. 이 점에서 조삼모사 이야기는 비인칭적 주체가 인칭적 주체와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로 독해될 수 있다. 장자에 따르면 비인칭적인 주체 형식을 회복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불가피하게 인칭적 주체들과 관계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비인칭적 주체 형식을 회복했다는 것은 우리가 무한자나 절대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제 타자와 잘 소통할 수 있는 역량만을 회복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일상적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역사적으로 규정되는 특수한 평가ㆍ판단ㆍ감정의 기준(=초자아)에 의해 지배되면서도, 이것을 자신의 진정한 내면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인칭적 주체들이다. 비인칭적 주체에게 이런 인칭적 주체들이 수행하는 판단과 행위는 꿈에 비유될 만한 상상적인 착각에 불과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비록 꿈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이들의 판단과 행위는 직접적으로 다른 존재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고, 심하면 다른 존재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칭적 주체들의 판단과 행위는 엄연한 물리적 현실성을 갖는다. 이 점에서 우리는 비인칭적 주체에게 왜 인시가 불가피한지를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인시라는 개념이 전제하고 있는 많은 철학적 함축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인시라는 개념은 우리가 비인칭적인 마음, 혹은 비인칭적인 주체 형식으로 변형되었다고 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해서 비인칭적 주체 형식을 갖는다는 것은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라기보다는 문제가 해결될 전망을 얻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비인칭적 주체 형식은 타자의 단독성에 따라 자신의 주체 형식을 재조정할 수 있는 역량을 가리킬 뿐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비인칭적 주체 형식은 수양론적 공간에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타자와 조우하는 삶의 공간에서 비인칭적 주체형식은 임시적 주체 형식으로 변형되어야만 한다.
만약 원숭이와 조우하게 되면 원숭이에 맞게 우리는 자신의 주체 형식을 임시적으로 정해야만 하고, 또 만약 어린이와 조우하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주체 형식을 어린이에게 맞게 임시적으로 정해야만 한다. 만약 비인칭적 주체 형식이 구체적인 타자와 조우했음에도 불구하고 임시적인 주체형식으로 현실화되지 못한다면,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고착된 주체 형식(=형이상학적으로 고착된 주체 형식)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비인칭적인 주체 형식이 타자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소통의 완수 여부는 오로지 타자와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지 주체가 미리 결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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