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김창흡(金昌翕)의 시작(詩作) 중에는 만영(漫詠), 잡영(雜詠) 등의 이름으로 된 연작시가 많지만, 특히 그의 만년(晩年)에 제작된 「벽계잡영(檗溪雜詠)」과 「갈역잡영(葛驛雜詠)」은 형신(形神)의 합일(合一)을 앞세운 그의 시세계가 바로 이를 두고 이름임을 알게 해주는 작품으로 차 있다. 일정한 주제도 없이 간결한 연작형식으로 된 「벽계잡영(檗溪雜詠)」과 「갈역잡영(葛驛雜詠)」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그려내고 있으면서도 완숙해진 그의 삶과 문학의 정채(精彩)를 극히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벽계잡영(檗溪雜詠)」부터 먼저 보인다.
浹旬連霧雨 稀少見星時 | 열흘동안 계속하여 안개비 내려 별을 볼 시간도 드물어졌네. |
院溽蒼苔産 籬欹雜卉支 | 기름진 뜨락에 푸른 이끼 돋아나고 기울어진 울타리는 잡초가 받쳐주네. |
蛇驕探雀鷇 燕弱挂蛛絲 | 교만한 뱀은 참새 새끼 찾고 약한 제비는 거미줄에 걸려 있네. |
物態供孤笑 詩成半俚辭 | 사물은 한바탕 외로운 웃음거리인데, 시가 이루어지니 태반이 속말이라네. 『三淵集』 권12. |
「벽계잡영(檗溪雜詠)」은 그의 벽계 이거(移居)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제작되고 있는데, 이 작품은 그 가운데서도 그가 62세 되던 해(1714년)에 쓴 43수 중 제17수다【제목 아래 ‘갑오(甲午)’라고 창작연대를 밝히고 있다】. 삶의 주변에 널려 있는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경물(景物)을 바라보며 형식에 구애받거나 기정(奇情)을 붙이는 일도 없이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이른바 진경(眞境)과 신정(神情)은 바로 이 평범 속에서 비로소 그 면모가 드러나고 있음을 본다. 진정한 조선시(朝鮮詩)로서의 한시(漢詩)가 곧 이런 시작(詩作)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이 작품이다.
인용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