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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 3.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준 선택권: 호칭 정하기 본문

연재/시네필

죽은 시인의 사회 - 3.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준 선택권: 호칭 정하기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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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준 선택권: 호칭 정하기

 

 

 

 

 

교실이란 공간에서 교사와 학생의 첫 만남은 긴장이 넘친다. 물론 단재학교는 작은 학교이기에 이렇진 않지만, 일반학교는 그렇다는 얘기다 

이상적으론 교사가 교실에 들어서면 학생들이 환호를 하며 맞이해줄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학생들은 교사의 등장과 전혀 상관없이 원래 하던 대로 떠들고, 교사를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학생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교단에 선 교사가 어떤 사람인지, 어디까지 자기들의 뜻대로 할 수 있는지 떠보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알기 때문에 교사도 교실에 들어갈 땐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표정은 굳어질 수밖에 없다. 이때 기선을 제압하지 않으면 1년 내내 힘들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더 표정은 굳게, 행동은 과격하게, 말투는 단호하게 하려는 것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교사들이 바로 이런 정형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숙제를 제시하며 하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을 주겠다고 윽박지르며, 반복적인 구절 암기를 통해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도 모두 그런 이유에서다.

 

 

모든 교사에게 첫 수업은 긴장된다. 그때 어떻게 기선제압을 하느냐가 문제처럼 다가온다.

 

 

 

너는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그런데 키팅 선생은 대결구도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학생들과의 대면한다. 그는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휘파람을 불며 그들을 스쳐지나갔고, 뒷문으로 나가고 나선 어서와~”라며 학생들을 박물관으로 불러 모았다. 당연히 학생들은 그런 교사의 돌출행동에, 아니 유일무이한 상황에 당황하며, 쭈뼛쭈뼛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들은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긴장감이나 억눌린 현실이 아닌 청량감을 느꼈을 것이고, “어서와~”라는 말을 들으며 현실에서 벗어나 일탈하는 상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키팅 선생님과의 첫 수업이자, 첫 시간. 휘파람을 불며 스쳐 지나간다. 학생들에게서 황당함이 물씬 느껴진다.

 

 

박물관에 모인 학생들에게 키팅은 자신을 이제부터 “Oh! Captain! My Captain!”이라 부를 것을 제안한다. 그건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자신을 존경하지 않음에도 교사의 권위만을 내세우며 억지 존경을 보이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존경하는 마음이 생길 때 그런 명칭을 불러주라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어떤 명칭을 부를까 선택할 수 있는 주체는 교사가 아닌 학생들이라 할 수 있다.

여태껏 우린 학생들이 교육의 당당한 주체라고 말하고 있었으면서도 한 번도 그들에게 무언가를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적이 없었다. 교육과정은 물론이고, 학교 규율에 대해 형식적인 학급회의만을 했을 뿐 의견을 나누고 함께 만들어가려 한 적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교사라는 명칭이나, ‘선생이란 호칭은 더더욱 학생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당연히 불러야만 하는 게 되었던 것이다. 키팅은 이런 현실에 균열을 내고자 했고, 그런 균열은 누구의 강요도 아닌, 바로 학생들 자신의 선택에 의해 시작되길 바랐다. 그래서 호칭을 선택하여 부를 수 있는 자유를 준 것이다.

 

 

명명을 한다는 건,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한다는 뜻이다.

 

 

 

학생들에게 호칭을 선택할 자유를 주다

 

누군가는 겨우 호칭 하나 부를 수 있게 한 것을 너무 심하게 의미부여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춘수 시인의 이라는 시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명칭이야말로 세계를 구성하고 인식하는 방법임을 알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2:19~20)

 

 

성경을 보면 이름 짓기=세상의 인식이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세상은 하느님이 만들었지만, 이름은 아담이 지었다. 그건 곧 세상에 대한 인식은 절대자를 통해 획일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각을 통해 아는 만큼, 느끼는 만큼 보이게 정해졌다는 사실이다.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식물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 도보여행을 할 때 가장 아쉬웠던 것도 수많은 식물들을 보며 걸었지만 눈 뜬 장님처럼 모두 다 잡초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알지 못하니, 이름을 부를 수 없었고, 이름을 부를 수 없으니 인식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호칭의 문제는 단순히 호칭=대상의 매칭 문제이기 이전에, ‘과연 그 대상을 어떻게 정의하고 인식하는가?’의 문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단재학교 학생들에게 종환쌤이 아닌 건빵쌤으로 불러달라고 처음에 말했었고, 지금은 건빵이란 호칭으로 자연스레 불리고 있다. 건빵은 단순한 호칭이 아닌,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을 담은 호칭이기 때문이다. 과연 키팅의 제안에 학생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걸 지켜보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잡초는 없다'. 그런데도 명명하지 않으면 뭐든 잡초, 잡된 것들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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