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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 2. 영화 속 학교, 현실 속 학교 본문

연재/시네필

죽은 시인의 사회 - 2. 영화 속 학교, 현실 속 학교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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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화 속 학교, 현실 속 학교

 

이제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된다. 그런데 첫 수업부터 우리가 어디서 많이 보던 광경이 나온다. 무작정 시험에 나오는 것을 추려서 반복 연습을 시키는가 하면, 많은 분량의 숙제를 내주고 그걸 하지 않으면 1점을 감점하겠다고 윽박지른다.

 

 

  배우는 이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저 점수를 받기 위해 좋은 상급학교에 가기 위해 배우는 것일 뿐이다.

 

 

 

학교라는 이름의 감옥, 학교라는 이름의 획일화 기구

 

이와 같은 단순한 수업, 겁주기 수업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다. 바로 이 학교에선 대입 위주의 교육을 한다는 것과 그것만 잘 따라오면 일류대학 입학은 떼어 놓은 당상이기 때문이다. 고로, ‘내가 행하는 어떠한 불합리한 것이라도 믿고 따르라, 그리하면 너에게 대학 합격의 명예가 뒤따르리라라는 성경적 패러디가 가능하다.

카메라의 초점이 교사에게서 학생으로 바뀐다. 학생들은 꿀 먹은 벙어리인양, 원래부터 조용한 사람인양 정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다. 교사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칠 새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적기에만 바쁘다. 교사의 가르침이 선포되는 순간, 그건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할 것이 아니라, 절대 진리이기에 무작정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금방 전까지 재잘거리며 떠들던 아이들이 교사가 교실에 들어오는 발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조용해졌다.

 

 

이 모습 또한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지 않은가? 경직되어 있고 긴장하고 있는 그 모습. 우리는 이들이 가장 활기차며 솟구치는 에너지에 몸 둘 바를 모르는 청소년시기임을 잊어선 안 된다. 그런 그들의 눈에 활기는 보이지 않는다. 잔뜩 주눅 들어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그저 교사의 처분을 바라고 있다. 우린 이렇게 거대 권력에 순응하는 인간으로 길들여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장면은 결코 과거의 장면이거나 다른 나라의 장면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른 게 있다면 교실에 여학생이 있다는 것 정도 되겠다. 50년이란 시간의 격차가 있고 태평양의 거리만큼이나 멀찍이 떨어져 있지만, 영화의 장면은 그런 세월과 거리를 무색하게 만든다. 그만큼 50년 전의 미국 학교와 지금의 한국 학교는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이걸 과연 학교의 특성이라 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서양식 교육모델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 할 것인가?

 

 

구글지도의 태평양. 엄청난 거리임을 알 수 있지만, 미국과 한국은 닮았다.

 

 

 

학교라는 감옥에서 탈출하는 법

 

학교의 태생 자체가 근대의 출현과 맞물려 있다. 산업혁명 이후에 수많은 일꾼이 필요해짐에 따라 효율적으로 한 공간에 아이들을 몰아넣고 짧은 시간 내에 지식을 습득하도록, 정해진 시간에 생체리듬을 맞추도록 학교는 만들어졌다. 그러니 한 명의 교사가 50명 이상의 학생을 통제하고 가르치는 게 가능했다. 교사는 기계에 프로그램을 입력하듯 학생들에게 국가가 인정한 지식만을 내뱉고 학생들은 그 지식을 무작정 암기하기만 하면 됐고, 40~50분 단위로 날카롭게 분절된 학과 시간에 맞춰 움직이기만 하면 됐다.

 

 

학교는 아이들을 순응적인 존재로 만드는 곳이었다.

 

 

이럴 때 교사의 역할이란 시간을 엄수하도록, 가르쳐진 지식은 비판하지 않고 무작정 받아들이도록 채찍질을 하는 것이다. 말이 좋아서 교사이지, 그저 말이 달리도록 채찍질을 해대는 마부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니 영화에서 등장하는 교사들에게서도 바로 이런 교사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그건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처럼 보통의 교사들이 스스로의 권위를 앞세워 학생들을 억누르고 자신의 말을 무작정 따르는 수동적인 인간으로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그때,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교사상을 지닌 사람이 바람처럼 등장한다. 그가 처음에 학생들을 만나는 과정이야말로 그가 지닌 개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위압적인 표정과 근엄한 자세로 앞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서는 교사들과는 달리, 그는 휘파람을 가늘게 불며 앞문으로 들어와 교실을 가로지르며 뒷문으로 나가버렸다. 그 순간 학생들은 생뚱맞은 교사의 태도에 당황해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뒷문으로 살짝 얼굴을 내밀고 학생들을 바라보며, “Come On!”이라 외쳤다. 한껏 짓눌린 학생들에게 교사의 휘파람, 그리고 어서 와라는 말은 억눌리고 감춰진 생기를 불러일으키게 했다. 사람은 깊은 호기심을 느낄 때 눈이 반짝 거린다고 하는데, 이 순간 학생들은 그 교사에게 깊은 호기심을 느끼게 됐던 것이다.

 

 

휘파람을 불며 학생들을 지나가는 키팅 선생님. 그 뒤로 학생들의 당황한 표정이 보인다.

 

 

그가 바로 이 학교의 졸업생이자 새롭게 부임하게 된 존 키팅 선생님이다. 그의 남다른 교육 철학은 배움이 사리진 학교에서 배움의 열정을 일으키는 것이라 할 만한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후기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기로 하겠다.

 

 

 

학생들은 키팅 선생님의 행동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엔 미소가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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