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표상의 세계에서 현상의 세계로
아렌트가 학생들에게 했던 첫마디는 “이론은 없습니다. 모든 이론을 잊으세요(No theories. Forget all theories).”였다. 그리고 곧바로, “생각을 중지하라”는 것이 자신이 우리에게 한 말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왜냐하면 “사유와 이론은 같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한 사건에 대한 생각은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는다면 그것은 잊혀지고” 그러한 망각은 우리 세계의 유의미성을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나 아렌트, 제롬 콘 편집, 김선옥 옮김, 『정치의 약속』, 푸른숲, 2007, 『정치의 약속』 편집자 서문 중에서.
비즐러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크리스타와 드라이만을 도왔지만, 죽어가는 크리스타를 살리지는 못했다. 트럭에 치여 죽어가는 크리스타를 가장 먼저 발견한 비즐러는 괜찮다고, 당신은 괜찮을 거라고, 타자기는 이미 옮겨놓았으니 당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만 크리스타는 남편에 대한 죄책감을 씻어내지 못한다. 아직 비즐러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드라이만은 크리스타의 사고현장으로 달려와 그녀에게 사죄한다. 용서해줘, 제발 나를 용서해줘. 당신을 의심한 나를, 당신을 한순간이나 증오했던 나를 크리스타는 사랑하는 남편의 품에 안겨 더 이상 감시도 처벌도 도청도 취조도 없는 저 세상으로 홀로 떠난다.
크리스타는 비즐러의 비밀을 간직한 채 안타까운 희생양이 되어버리고, 드라이만은 모든 혐의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비즐러는 강력한 문책을 받은 후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사회적 지위를 박탈당한다. 비즐러의 상사는 눈에 띄는 증거는 잡을 수 없지만 이 모든 것이 비즐러의 솜씨임을 직감한다. “이번 임무는 실패야! 자네의 도청 경력도 끝이고! 자네는 편지 감시부로 좌천될 거야. 편지 봉투를 열고 그게 조사되기만을 기다리는 게 자네 일이지. 그 짓을 앞으로 20년간 하게 될 거야. 20년! 더럽게 긴 시간이지.” 비즐러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이제 자신이 ‘무엇’이 아니라 ‘누구’로 살아가야만 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유를 얻었다.
타인의 가치를 그 사람의 지위로 판단하는 ‘표상의 세계’로부터 타인의 삶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현상의 세계’로 옮겨간 비즐러.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크리스타를 구하려는 한 그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아무것도 없다. 그는 사회적 지위를 잃고, ‘표상의 세계’에는 완전히 무력한 존재로 전락한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누군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도청하여 밥을 버는 악몽 같은 일상의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된다. 타인의 가치를 그 사람의 지위나 그가 가진 정보나 재산으로 평가하는 ‘표상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타자 앞에 진정으로 ‘나타나는(현상하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타인 또한 나의 사회적 위치를 통해 나를 판단할 것이며, 그렇게 갖가지 복잡한 ‘표상’이 우리의 정체성을 은폐하는 한, 나의 진정한 자아는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인간이 ‘서로에게 나타나기’ 위해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바로 ‘공공적 공간’임을 강조했다. 서로에게 자신의 진정을 표현함으로써 그 무엇으로도 교환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공공의 공간. 그것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는 공공적 공간을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who)인가를 리얼하고도 교환 불가능한 방법으로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정의한다.
아렌트는 인간의 삶을 두 가지 위상으로 구별하고 있다. 바로 ‘비오스’와 ‘조에’가 그것이다. ‘비오스’는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개체의 삶이고, 가사성(可死性)을 조건으로 하는 일회적 성격을 띤다. 인간의 삶은 이 ‘비오스’의 위상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삶에 대하여 ‘유례없는 것’이고, 이 개인적 삶의 유례없음이 공공적 공간에서의 복수성을 구성한다. “인간의 복수성이란 달리 유례가 없는 존재자들로 이루어진 역설적인 복수성이다.” 공공적 공간은 비오스의 공간, 정치적인 삶이 생겨나는 공간이다. 한편 ‘조에’는 ‘생물학적인 생명’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조에’의 위상에서는 ‘인간이라는 일자성’을, 즉 동물로서의 인간 모두에게 공통되는 생명을 살고 있다.
-사이토 준이치, 윤대석/류수연/윤미란 옮김, 『민주적 공공성』, 이음, 2009, 75쪽.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