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아무 것도 아닌 인간
우리 시대의 진정한 난점은 전체주의가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후에도 전체주의의 고유한 형식이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
그렇게 비즐러는 모든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커리어’를 잃고 사회적 지위와 명성까지 함께 잃어버린다. 그는 기계적으로 편지봉투를 뜯는 일만 반복하면서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한다. ‘타인의 편지’를 미리 뜯어보아 감시하는 일 또한 ‘이미 해방된’ 비즐러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남아 있는 자신의 삶을 위해 그 비루한 노동을 견딘다. 그처럼 강인한 인간이라면, 정말 20년 동안이라도, 설사 평생이라도, 그 단조로운 노동을 참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역사적 대격변이 일어난다. 크리스타가 죽은 지 4년 7개월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이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감시와 처벌의 세계는 이렇게 덧없이 끝난다. 죽을 때까지 편지봉투 뜯는 일만 계속할 것만 같았던 비즐러의 삶에도 뜻밖의 변화가 찾아온다. 물론 통일된 독일의 혼란 속에서 그에게 맡겨진 임무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더 이상 밥을 벌기 위해 타인의 삶을 감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분명 그에게 있어 또 다른 영혼의 해방이다.
장벽이 무너졌다!
장벽이 무너졌어요!
여기는 축제의 현장입니다, 젊은이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물밀 듯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포옹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베를린에서 이 보도를 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1989년 11월 9일, 역사에 거대한 한 획을 긋는 날입니다. 생방송으로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영화 『타인의 삶』 중에서
비즐러는 누구라도 타인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표상의 세계’를 넘어, 그 누구라도 타인의 존재를 대신할 수 없는 ‘현상의 세계’로 옮겨갔다. 그가 자기 자신임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현상의 세계, 그곳으로 갈 수 있는 ‘편도티켓’은 역설적으로 그가 어떤 대단한 사회적 지위도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가능했다. 내가 ‘무엇’인지에 집착하지 않을 때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드러내고 실천할 수 있는 세계. 그가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되는 순간, 그는 진정한 그 자신이 된다.
그가 예술가들의 도청을 담당하는 고위급 간부나 교수가 아니라 아무도 찾아와주지 않는 일개 말단직원이 되는 순간, 그는 진정한 ‘누구’로서의 위엄을 갖추게 된다. 그는 비로소 어떤 ‘규정된 포지션’이 아니라, 절대적인 자아나 절대적인 타자가 아니라, 그 모든 존재의 카오스 ‘사이’에 존재하는 법을 깨달은 것이다. 누구의 명령에도 종속되지 않기 위해, 누구의 자유도 빼앗지 않기 위해, 마침내 타인의 운명과 불리할 수 없는 나 자신의 운명을 해방시키기 위해, 그는 ‘단단한 정체성’이 아니라 ‘그 누구도 아닌’ 비인칭의 세계에서 표류하기로 한 것이 아닐까. 그 고통스러운 표류야말로 비즐러의 오랜 고뇌가 찾아낸 마지막 윤리였다. 비즐러가 ‘사이’에 존재하는 법을 깨달은 순간, 그 누구도 자신의 곁에 두지 않을 것만 같던 특유의 냉혹한 분위기는 사라진다. 그는 그저 하찮은 허드렛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웬일인지 그의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에서는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영혼의 품위가 우러나오기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의 정치적 기능이란 우정과 같은 이해에 기반을 둠으로써 어떠한 지배도 필요하지 않은, 이러한 공통의 세계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이 목적을 위해 소크라테스는 두 개의 통찰에 의존했다. 하나는 델포이 신전에서 아폴론이 말한 ‘너 자신을 알라’는 명제에 담긴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플라톤이 전하는 ‘하나가 되기 위해 나 자신과 불일치하는 것보다는 전 세계와 불일치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과 연관된다. (……) 소피스트들의 가르침의 핵심이 모든 일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논의될 수 있다는데 있었다면, 소크라테스는 모든 소피스트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소피스트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수의 서로 다른 로고스들이 있으며,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 제롬 콘 편집, 김선옥 옮김, 『정치의 약속』, 푸른숲, 2007, 47~48쪽.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