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임란 웅치전투에서 전사한 장수를 그리다
이 시는 임진왜란 때 웅치전투에서 용명을 떨치고 장렬히 죽은 한 장수의 사적을 그린 내용이다.
임진년 7월 황간(黃澗)에서 전라도 땅으로 침공한 적군은 금산(錦山)에서 고경명(高敬命) 부대를 격파하고 한편 순천 방면에서 또 적군이 쳐들어올라와, 아군은 이 양로의 적병을 저지하기 위해 진안서 전주로 넘어오는 웅치에 방어선을 구축했던 것이다. 전라도의 심장부인 전주를 지키는 일이 달려 있었다. 바로 작중에 다루어진 사실은 이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주인공은 당시 김제군수로 부임했던 정담(鄭湛)이라는 무장이다. 거기 싸움에서 생환한 사람이 전하기를, “김제군수는 적군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하면 꼭 맞히고 맞혔다 하면 꼭 꿰뚫었다. 그 혼자 죽인 수가 백여급(級)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그가 죽인 자들 가운데 하나는 적군에서 최고로 손꼽혀 전라감사로 일컫던 놈이다. …… 적군이 끝내 전주를 침공하지 못했던 것은 정아무의 무훈이다”라고도 말하였다(『죽암공실기ㆍ상검찰사상공합하서』), 이러한 사적이 시의 서사적 내용을 이루고 있다.
시의 작자 조성립은 알려진 인물이 아닌데 서사의 대상인 정담의 행적 역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이다. 조성립은 정담이 전쟁 중에 군수로 부임하여 의병을 모집할 때 손잡고 같이 추진했으며, 웅치전투에서는 후방 지원의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정담의 비장한 최후는 그에게 남달리 감회가 컸으며 그래서 「비분탄」이라는 제목으로 이 시를 쓴 것이다.
「비분탄」은 외적의 침략에 맞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자기의 향토를 지킨 그야말로 애국문학이다. 비록 시적 표현의 수단이 높지 못한 무명인사의 작이라도 오히려 절실한 느낌은 비할 데 없다고 생각된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2020년, 54~55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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