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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참으로 지극한 말이기에 수사도 필요치 않았다
임진왜란에서 민중이 체감한 고통을 서사적 화폭에 담은 명편으로 다음에 실려 있는 허균의 「노객부원(老客婦怨)」과 이안눌의 「사월십오일(四月十五日)」을 손꼽는다. 후일에 상흔(傷痕)을 회상하는 트라우마적 성격을 갖는 것이다. 여기 새로 발굴해서 소개하는 임환의 「부시행(負尸行)」과 「무비자(無鼻者)」는 시인 자신이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웠거니와, 현재 시점에서 전쟁의 실상을 매우 극적으로 표출한 작품이다.
「부시행(負尸行)」은 삶의 터전인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고 민간인을 마구 학살한 참상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그네들 하는 말 들어보니 적군을 만나 목숨을 잃었다고 누군 아비 잃고, 누군 어미 잃고, 누구는 형제를 잃었다는 구나[皆言逢賊殞身命 或父或母或兄弟]”라고 호소하는 말로 그 비참한 상황이 짐작되는데, 당장 눈앞에 지고 가는 시체들이 증명하는 것이다. 전체 여덟 줄에 불과한 짧은 작품이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는 실로 무한하다 하겠다. 시의 형식적 측면에서 보면 외형상으로 7언율시처럼 되어 있으나 율시가 요구하는 평측(平仄)이나 대구법을 따르지 않고 있다. 말이 참으로 지극하면 수사를 필요로 않는다 했듯, 이 시편이 바로 그러한 것으로 여겨진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2020년,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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