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곽점의 죽간본이 불러일으킨 소용돌이
1993년 10월, 호남성(湖北省) 형문시(荊門市) 사양구(沙洋區) 사방향(四方鄕) 곽점촌(郭店村)에 자리 잡고 있는 전국(戰國)시대의 분묘 하나를 발굴했는데, 그곳에서 804개나 되는 죽간(竹簡, 문자가 새겨진 대나무 쪽)에 쓰여진 一萬三天여 글자의 문헌이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이 모두가 매우 심각한 개념성의 학술저작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분묘주인 자신의 라이브러리(library)가 같이 묻힌 듯한데, 그렇다면 이 분묘의 주인은 대단한 사상가였을 것이다.
부장품중에 ‘동궁지사(東宮之師)’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는 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분묘의 주인은 나라의 태자(太子)의 선생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맹자(孟子)와 동시대며 맹자(孟子)보다 약간 나이가 많은 초(楚)나라의 사상가 진량(陳良)의 묘로 비정(比定)하는 까지도 제기되었다.
대부분의 문헌이 유가저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죽간 중에 도가저작으로서 『노자(老子)』 삼편(三篇)과 『태일생수(太一生水)」 일편(一篇)의 2종이 포함되어 있다는 획기적인 사실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이다. 이 분묘는 하장(下葬)시기의 하한선이 B.C. 300년 경이므로, 이 분묘속의 죽간(竹簡)은 모두 B.C. 300년 이전의 통용연대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왕퇴(馬王堆)의 백서(帛書)보다 연대가 근 두세기까지를 소급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곽점초묘죽간(郭店楚墓竹簡)’이라고 부르는 이 문헌들은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사상사를 재구성하는데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아주 생생한 근거를 제시한다고 본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중엽의 제1차 자료를 지금 우리가 우리의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그 감흥이 전달될 수 없겠지만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이 문헌에 비정하여 많은 다른 문헌의 문제점을 비교검토함으로써 중국 고대사상에 관하여 보다 정확한 추측이 가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곽점(郭店)의 출토로 요즈음 중국철학계는 구설에 안주할 수 없도록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노자(老子)』의 문제만 하더라도 이 곽점(郭店, 꾸어띠엔)의 죽간본(竹簡本)이 마왕퇴(馬王堆, 마왕뛔이)의 백서본(帛書本)보다 문헌학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마왕퇴(馬王堆)의 백서본(帛書本)은 기본적으로 현존하는 금본(今本)의 정당성을 강화시켜 주며, 판본의 많은 문제점을 해결하여 주는 서지학적 보조자료의 역할이 그 주효용(主效用)이었다. 그러나 곽점(郭店)의 죽간본(竹簡本)은 금본(今本)의 정당성 자체를 회의케 하며,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경』이라는 문헌의 성립과정에 대해 매우 결정적인 새로운 가설을 가능케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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