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빙어과 정란의 목각엄마
‘왕상빙어(王祥冰魚)’의 이야기도 마음씨가 악랄한 계모가 겨울에 잉어를 먹고 싶어하니깐, 왕상이라는 효자가 꽁꽁 얼어붙은 연못 얼음을 깰 수가 없어 옷을 벗고 알몸으로 드러누워 얼음을 녹이려 하자, 얼음이 스스로 녹고 잉어 두 마리가 튀어올라 왔다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도 ‘효성감천(孝誠感天)’의 한 패턴으로서 곽거경 『이십사효」에 등장하여 권준의 『효행록』을 통과하여 『삼강행실도』로 들어갔다.
그리고 악랄한 계모에게도 효도를 다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민자건(閔子騫)의 이야기(『설원(說苑)』에 실림)로부터 내려오는 한 패턴이다. 이 이야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조선의 아동들이 계모에게 학대를 받으면서도 끽소리 한번 못냈을 것인가?
유향의 『효자전』에도 나오고 한대의 화상석에도 나오는 포퓰라한 주제이며 『이십사효』 → 『효행록』 → 『삼강행실도』로 들어간 ‘정란각모(丁蘭刻母)’라는 고사가 있다. 이 정란의 고사는 버젼의 변화가 너무 심해 일정한 이야기가 없지만, 우선 우리나라 『효행록』의 버젼을 한번 들어보자.
정란(남자이다)은 엄마에게 지극한 효도를 다하였다. 그런데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자 애통하는 마음 그지없어, 나무를 각하여 엄마의 형상으로 만들어 놓고, 그 목각엄마를 섬기기를 살아계신 엄마와 같이 하였다. 그런데 정란이 밖에 나갔을 때에, 심술궂은 부인이 불경(不敬)한 여자인지라, 바늘로 목모의 눈깔을 찔렀다. 그랬더니 눈에서 피가 나고 눈물이 흘렀다. 정란이 귀가하여 이를 살피고 즉시로 그 아내를 내쫓았다. 그 효성이 이와 같았다.
丁蘭事母大孝, 母因病亡, 哀痛固極. 刻木爲母形, 事之如生. 蘭出外, 其妻不敬, 以針刺目, 出血泣下. 蘭歸察知之, 卽逐其妻, 其孝如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삼강행실도』에서 다음과 같은 버젼으로 세련화된다.
정란은 하내(河內)의 사람이었다. 어려서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었고 공양의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무를 조각하여 어머니 형상으로 만들어 놓고 섬기기를 살아계신 어머니 모시듯이 하였다. 목상에게 아침ㆍ저녁으로 꼭 문안인사를 올리었다. 후에 이웃에 사는 장숙(張叔)이라는 사람의 처(妻)가 정란의 처에게 그 목상을 빌려달라고 하였다. 정란의 처가 무릎을 꿇고 그 목상을 빌려주려고 하자, 목상이 기뻐하지 않았다. 그래서 목상을 빌려주지 않았다.
丁蘭, 河內人. 少喪考妣, 不及供養. 乃刻木爲親形像, 事之如生, 朝夕定省. 後鄰人張叔妻從蘭妻借看. 蘭妻跪授木像, 木像不悅, 不以借之.
그런데 어느날 장숙(張叔)이 술에 취하여 들어와 목상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지팡이로 목상 대가리를 두드려 했다. 정란이 집에 돌아와 목상을 보니, 목상의 안색이 심히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에게 연고를 물으니 아내가 전후 사정을 다 이야기하였다.
張叔醉罵木像, 以杖敲其頭. 蘭還見木像色不懌, 問其妻, 具以告之.
정란은 분한 마음에 그 길로 장숙에게 가서 그를 몽둥이로 쳤다. 나졸이 와서 정란을 체포하였다. 정란이 목상에게 정중하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자, 목상은 떠나는 정란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군현의 사람들이 정란의 지극한 효성이 신명(神明)에 통하는 것을 보고 찬미하였다.
卽奮擊張叔, 吏捕蘭. 蘭辭木像去, 木像見蘭爲之垂淚. 郡縣嘉其至孝通於神明.
그런데 이 이야기는 일본에만 남아있는 고본(古本) 효자전으로 양명본(陽明本)이라고 부르는 판본에는 다음과 같이 다른 버전으로 나타난다.
하내(河內)의 사람인 정란이라고 하는 자는 지극한 효자였다. 어려서 엄마를 여의었고, 나이가 15세가 되었을 때 엄마에 대한 극진한 사모의 정이 그치지를 않아 나무를 깎아 엄마를 만들었다. 그리고 생모를 섬기는 것과 하등의 다를 바 없이 목모를 공양하였다.
河內人丁蘭者, 至孝也. 幼失母, 年至十五, 思慕不已. 乃剋木爲母, 而供養之如事生母不異.
그런데 정란의 처는 매우 불효한 여자였다. 어느 날에 불을 지펴 목모의 얼굴을 끄슬렸다. 그날 밤 정란은 꿈에서 목모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네 처가 내 얼굴을 끄슬렸다.’ 정란은 그 부인을 곤장으로 다스리고 난 후에 내쫓아버렸다.
蘭婦不孝, 以火燒木母面. 蘭卽夜夢語木母, 言: ‘汝婦燒吾面.’ 蘭乃笞治其婦, 然後遣之.
또 어느날, 이웃 사람이 정란에게 도끼를 빌리러 왔다. 정란은 목모가 계신 곳을 열고 상의를 드렸더니 목모의 안색이 심히 기쁘지를 않았다. 그래서 도끼를 빌려주지 않았다. 그 이웃 사람은 눈을 흘기며 앙심을 품고 돌아갔다.
有隣人借斧, 蘭卽啓木母, 木母顔色不悦. 便不借之. 隣人瞋恨而去.
어느날 그 사람이 정란이 집에 없는 틈을 타서 들어와 칼로 목모의 어깨를 내리쳤다. 그랬더니 유혈이 낭자하여 바닥을 적시었다. 정란이 집에 돌아와 이를 보고, 비참하여 울부짖으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즉시 이웃에게 달려가 그 놈 모가지를 베어다가 목모 앞에서 제사를 지내었다. 관(官)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죄를 묻지 않았다. 그리고 정란에게 녹(祿)과 위(位)를 더해주었다.
伺蘭不在, 以刀斫木母一臂, 流血滿地. 蘭還見之, 悲號叫慟, 卽往斬隣人頭, 以祭母. 官不問罪, 加祿位其身.
찬하여 말하노라. 정란은 지효(至孝)하도다. 어려 어머니를 여의고 추모하는 마음 미칠 곳 없어 목모상을 세우고 조석으로 공양하였네. 사친(事親)에서 특출났고, 그 몸은 갔으나 이름은 남아 만세에 진실하도다.
贊曰 丁蘭至孝, 少喪亡親, 追慕无及, 立木母人, 朝夕供養, 過於事親, 身沒名在, 萬世惟眞.
독자들은 과거의 설화들이 기록자에 따라 제멋대로 변형해가는 하나의 재미있는 샘플을 목격했을 것이다. 말하려고 하는 주제는 확실한 그 무엇이 있지만 결코 바람직한 윤리를 가르치고 있지는 않다. 목모 때문에 부인을 내쫓은 이야기나, 목모 때문에 살인까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결코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이야기가 실제로 중국법제에까지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사실이다. 친부모의 효도를 위한 복수살인은 정당화되었으며 이 주제는 중국법제사의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는 과제상황이다. 부인을 내쫓는 이야기라면 더욱 끔찍한 이야기가 『효행록』에 실려 있다. ‘포영거처(鮑永去妻)’의 항목을 보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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