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 생리성과 도덕성
1922년 10월 3일, 『동아일보』 기사를 한번 살펴보자.
경남(慶南) 삼천포(三千浦) 동리(東里) 김형수(金馨洙, 34세)는 신병으로 신음한 지 우금(于今) 수년이라. 그 처 강씨(姜氏, 33세)와 그 아우 김덕수(金德洙, 23세)는 이래 장구한 세월을 하루와 같이 간호하는 바 약석의 효험이 없이 병세가 점점 위중하여져서 지난 달 23일에 이르러 그만 절명하려 함으로 그 아우 김덕수는 급히 식도(食刀)로써 넓적다리 살을 베어 선혈을 그 형의 운명하려는 입에 떨어트리었더니 절명되었던 그 형은 곧 회생되어 10여 시간을 지내어 그 이튿날 오후에 또 운명하려 함으로 그 처 강씨는 왼쪽 손 무명지를 단지(斷指)하여 그 피를 흘리어 넣었더니 다시 일주야(一晝夜)를 회생하였다가 운명을 어찌하지 못하여 27일에 필경 사망하였는데, 부근 인사들은 김덕수의 우애와 강씨의 열행을 모두 칭찬하여 그곳 청년회에서도 표상을 하리라더라(삼천포).
이러한 유형의 기사들은 『동아일보』에서만도 수없이 발견된다. 남편에게 우육(牛肉)이라 가장하고 자기 살을 멕인 여인이 오히려 병석에 눕게 되어 병원에 입원했다는 등의 기사가 눈에 띈다. 할고(割股)한 부인이 대부분 남편보다 먼저 황천객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우행이 미담으로서 1920ㆍ30년대 우리나라 신문의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선왕조의 『삼강행실도』의 비극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연상될 수 있다.
우리는 결코 과거를 낭만화시킬 수 없다. 이러한 세태에 일침을 가하는 논설이 『동아일보』에 실려 있는데(1924년 1월 6일 기사) 누구의 글인지 추정하기는 어려우나 참으로 희대의 명문이며, 우효의 문제점을 너무도 명료하게 드러내놓는 논리를 담고 있어 여기 좀 길지만 전문을 인용한다. 개화기 지사의 정의로운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그 제목부터가 확고한 의식이 드러나 있다. ‘제졀로 살자 - 껍질 도덕인 단지의 류행.’
근일 경향 각처를 물론하고 소위 효자나 절부의 단지(斷指)가 매우 많이 유행되는 모양이다. 손가락 하나를 끊어서 죽은 사람이 정말 소생한다 하면 남의 아랫사람 된 사람은 손가락 하나도 남길 수가 없을 것이다.
◇ 부모가 세상을 버리려 할 때의 자식된 마음은 정말 비통한 것이요, 남편이 운명을 다하려 할 때의 아내 된 마음은 극히 아플 것이다. 이 자리를 당하여 여간 손가락쯤이야 아플 줄을 헤아릴 수 없을 것은 사실이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죽어가는 목숨을 살리려 할 것은 인정의 당연한 일일 것이다.
◇ 우리는 이와 같은 아름다운 심사를 결코 가볍게 비평하고자 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고왕금래에 단지나 열지를 한 자식이나 아내가 있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자식이나 아내를 위하여 그 같은 일을 하였다는 아비나 남편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은 없다. 아! 이것이 대체 무슨 모순됨이리오.
◇ 인정은 일반이다. 아비가 죽는 것을 자식이 보기나, 자식이 죽는 것을 아비가 보기나 그 무엇이 다름이 있으리오. 하거든 어찌 윗사람의 단지는 없는가. 이는 두말할 것도 없다. 껍질만 남은 효(孝)와 열(烈)이라는 형식도덕으로 인함이다. 종래 우리의 도덕은 아래 사람에게만 많이 지우고 윗사람은 헐한 편이 많았다. 다시 말하면 후생(後生)을 압박하여 멸망을 청해 드렸을 뿐이다.
◇ 아! 부모의 죽음과 남편의 죽음에 손가락을 끊는 가련한 사람들아! 우리는 그대들의 행위를 악이라고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손가락의 피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는 없다. 낫키도 저절로 이오, 죽기도 저절로 이다. 살기도 저절로 살자. 껍질 도덕에 갇혀 살지 말고.
이 위대한 논설이 우리에게 일깨우고자 하는 것은 효의 도덕성의 일방성(the unilaterally hierachical character of morality)에 관한 것이다. 어찌하여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만이 효가 될 수 있는가?
앞서 말했듯이 「예운」편에서 말하는 십의(十義)는 어디까지나 쌍방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효의 원초적 본질을 아래로 부터 위에로의 방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아래에로의 방향에 있는 것이다. 효의 가장 원초적 사실은 병아리를 품는 암탉의 행태에서 볼 수 있듯이(병아리를 기를 때는 암탉은 솔개에게도 저항한다), 어미의 자식에 대한 보호본능과 관련된 것이다. 이 보호본능은 도덕적 현상이라기보다는 핵산 배열의 정보 속에 내장된 생리적 코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보호는 갓 태어난 개체가 사회화(socialization) 되기까지만 유지되는 것이다. 여기 ‘사회화’라고 하는 것은 그 개체가 속한 사회 속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시기를 가리킨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동물은 원래 그 사회화의 과정이 비교적 긴 시간을 요하는 동물인 데다가 군집생활을 통하여 문명세계를 창출하면서부터 그 사회화과정이 비상하게 연장되었다. 따라서 연장되는 것만큼 부모의 보호가 필요하게 되고, 그 필요성은 생리적 한계를 넘어 도덕적 요구로서 발전해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효에는 생리성과 도덕성이 혼합되어 있다.
그러나 그 효가 도덕적 차원으로 발전하면 할수록 그 핵심에 있는 것은 부모의 자애이지 자식의 효도가 아니다. 부모의 자애 때문에 자식의 효도는 마땅한 당위로서 인식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리적 코딩(coding)을 넘어서는 도덕적 ‘베품’이기 때문이다. 효의 본질은 위로부터 아래에로의 베품에 있는 것이다. 이 ‘베풂’의 전제가 없이 아랫사람의 복종이나 희생,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권위주의적 강탈이요, 복종주의적 강압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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