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재장(三才章) 제팔(第八)
문화적 역량을 지닌 지도자
증자가 이때까지 주욱 듣고 나서 감탄하여 외쳤다: “선생님, 참으로 대단합니다. 효의 위대함이란!” 曾子曰: “甚哉, 孝之大也!” 이에 공자께서 계속하여 말씀하시었다: “대저 효란, 하늘의 벼리[經]요, 땅의 마땅함[誼]이며, 사람이 살면서 실천하지 않을 수 없는 당위적 행동[行]이다. 효란 대체 하늘과 땅의 벼리이요 우주의 질서이니 사람이 본받지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대저 성인께서 사람을 가르치신다고 하는 것은 하늘의 밝음[明]【명백하게 내재하여 있는 질서, 시간적 개념】을 본받고, 땅의 이로움(利)【만물이 땅에서 생성되는 다양한 이치의 이로움, 공간적 개념】을 활용하여, 천하백성을 가르치고 훈도하는 것이다. 子曰: “夫孝, 天之經也, 地之誼也, 民之行也. 天地之經, 而民是則之. 則天之明, 因地之利, 以訓天下. 그러므로 모든 위대한 인민의 지도자는 그 백성을 교화하는 방식이 엄숙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루어지며, 그 다스리는 방식이 엄형을 내리지 않아도 스스로 질서있게 된다. 옛 선왕들께서는 천지의 벼리인 효도로써 인민을 가르치면 인민이 스스로 감화되어간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是以其敎弗肅而成, 其政不嚴而治. 先王見敎之可以化民也. 그러하므로 인민의 지도자는 솔선수범하여 자신의 애친(愛親)하는 마음을 인민에게로 넓혀나가야 한다. 그리하면 백성들이 그 부모를 소홀히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인민의 지도자는 인민들에게 말을 할 때에도 반드시 덕성의 마땅함으로써 해야 한다. 그리하면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도덕적 행동들을 흥기(興起)시키게 된다. 인민의 지도자가 공경하는 마음과 사양하는 마음으로 솔선수범하니 백성들이 다투지 아니 하고, 인민들을 예(禮)와 악(樂)으로써 그 문화를 선도하니 백성들이 화목하지 않을 수 없고, 인민들에게 올바른 호오(好惡)를 제시하니 백성들은 스스로 금(禁)해야 할 것을 자각한다. 是故先之以博愛, 而民莫遺其親; 陳之以德誼, 而民興行. 先之以敬讓, 而民弗爭; 導之以禮樂, 而民和睦; 示之以好惡, 而民知禁. 『시경』 소아(小雅) 「절남산(節南山)」 노래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빛나고 또 빛나는 태사 윤씨여! 백성들이 모두 그대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도다!’” 『詩』云: ‘赫赫師尹, 民具爾瞻.’” |
‘삼재장’은 매우 이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효를 우주론적 차원(cosmological dimension)으로 승화시켜 ‘인(仁)’과도 같은 인간세의 최고덕목으로서 논구했다는 데 특별한 매력이 있다. 여기서는 우주적 질서(Cosmic Order)와 인간의 질서(Human Order)가 상응관계에 놓여 있다. 더구나 『효경(孝經)』이라는 책명이 본 장에서 유래되었다는 맥락에서도 본 장은 『효경』 속에서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장 중의 하나이다.
‘삼재(三才)’라는 말은 천(天)ㆍ지(地)ㆍ인(人)이라는 우주구성의 보편적 원리개념이며, 『주역』의 「설괘」, 「계사(繫辭)」하에서 유래하였다. 그런데 주자는 『효경간오』에서 본 장을 해설하면서 정나라의 공자 태숙(太叔: 대숙大叔으로도 쓴다)이 조간자(趙簡子)에게 정자산(鄭子産)의 말로서 인용한 구절을 도용한 것이라 하여 매우 불쾌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단지 예자를 효자로써만 바꾼 것이고, 문세(文勢)가 오히려 『좌전』의 통관(通貫)됨만 같지 못하고, 조목 또한 오히려 『좌전』의 완비(完備)됨만 같지 못하다[唯易禮字爲孝字, 而文勢反不若彼之通貫, 條目反不若彼之完備].”
그러나 『좌전』의 문장과 『효경』의 문장의 선후를 말하는 것은 매우 현명치 못하다. 막말로 『효경』을 『좌전』이 베꼈다고 해도 안 될 일은 없다. 텍스트의 문제들은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 그것은 제각기 다른 양식적 표현이며 그것이 설사 같은 의미맥락을 내포하고 있다 하더라도 일자에 준거하여 타자의 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다. 양자가 어떤 사유의 전승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문제가 되는 『좌전』의 문장은 나의 『논어한글역주』 제2권, 506 ~ 8에 상세히 해설되어 있다.
「삼재장」에서 내가 가장 감명을 받은 대목은 효를 통한 이상적 다스림의 결론은 ‘불숙이성(弗肅而成)’, ‘불엄이치(不嚴而治)’라는 엄숙주의와 엄형주의 배제이다. 유교적 덕치(德治)를 이상으로 하면서 도가적 사유를 반영하고 있다. ‘저절로 이루어지고, 저절로 다스려지도록’ 만드는 것이 도덕주의의 궁극적 이상인 것이다. ‘엄숙(嚴肅)’이라고 우리가 쓰는 말이 바로 이런 구절에서 유래된 것이다. 호문(互文)의 두 글자를 나누어 배속시킨 것이다. ‘숙(肅)’은 ‘엄숙’으로 ‘엄(嚴)’은 ‘엄형’으로 번역하였다. 가장 비근한 인간의 덕목으로서 자연스러운 질서를 사회에 안착시키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것이 스스로 기능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도덕의 이상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유가사상은 매우 세련된 것이며, 오늘날의 현대사회에도 물론 적용 가능하다.
「절남산(節南山)」이라는 노래는 주나라 삼공(三公) 중의 하나이며 당시 최고의 권력자였던 태사 윤씨(尹)가 국정의 혼란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질책하는 시이다. 국민 모두가 너 하나 쳐다보고 있는데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는 원망과 더불어 그 높은 지위에 대한 찬사를 동시에 보내고 있다. 실로 정치적 지도자 한 사람의 ‘문화적 역량’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질서에 너무도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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