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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이인 제사 - 25. 덕이 있다면 친구가 생긴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이인 제사 - 25. 덕이 있다면 친구가 생긴다

건방진방랑자 2021. 5. 2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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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덕이 있다면 친구가 생긴다

 

 

4-2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덕은 외롭지 아니하다.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이다.”
4-25. 子曰: “德不孤, 必有隣

 

호인의 말대로 15부터 24장까지를 증자 문인의 소기(所記)라고 한다 면 이장은 또 다시 공자의 오리지날한 기온 파편의 수집일 것이다. 그런데 이 로기온을 여기 편집시킨 의도는 매우 명백하다. 1이인위미(里仁爲美)’와 수미일관한 주제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편은 이인위미(里仁爲美)’로 시작하여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으로 끝나는 매우 짜임새 있는 편집체제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다음의 26은 자유(子游)의 말로서 부록격으로 귀엽게 첨가된 것이다. 그리고 덕불고, 필유린이라는 주제는 공자가 평생을 고아처럼 살면서 느낀 삶의 뼈저린 체험을 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덕불고(德不孤)’필유린(必有隣)’의 조건절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주장이다. ()이란 근원적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고립(孤立)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은 나의 존재에 온축(蘊蓄)되어 가는 것이지만, 그것은 반드시 관계양상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관계 속에서만 형성되어 가는 것이다. 그 관계를 공자는 유린(有鄰)’ 이라 표현한 것이다.

 

주역(周易)』 「계사상에 존재의 방향은 같은 유로써 모아지고, 다양한 사물은 같은 무리로써 나누어진다[방이유취(方以類聚), 물이군분(物以群分)]’이라 한 것이나, 건괘 문언모든 소리는 배음관계에 있는 소리들이 항상 같이 울리게 마련이며, 모든 기는 상통하는 기들끼리 서로 구하게 마련이다[동성상웅(同聲相應), 동기상구(同氣相求)]’라 한 것이 모두 이 덕불고(德不孤)’에 대한 주해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곤괘 문언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남아넘치는 경사가 있으며, 불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남아넘치는 재앙이 있다[적선지가(積善之家), 필유여경(必有餘慶); 적불선지가(積不善之家), 필유여앙(必有餘殃)]’이라고 한 것은 필유린(必有隣)’을 강조하는 중국인의 정서를 잘 대변해준다.

 

본시 불교의 업감연기(業感緣起)에 의한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사상은 철저히 개인의 행위를 주체로 한 것이다. 그런데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면 인과응보가 가()의 관계양상을 주체로 하는 집단적 성격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즉 내 업()의 영향을 내 자식이나 가족이 같이 받게 된다는 것이다. 4세기 동진(東晋)의 치초(郗超)는 이러한 가()를 단위로 하는 인과응보의 교설의 오류를 통렬히 지적하고 있으나 중국인의 불교이해는 이러한 필유린(必有隣)’의 집단적 성격을 결코 이탈하지 않았다. 입학 시즌이 되면 자식의 입학축원을 비는 보살집단의 존재가 바로 이러한 가()를 단위로 하는 유교적 불교의 성격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이다.

 

 

()’은 친한 사람들이다. ()이 고립되지 않으면 반드시 비슷한 끼리는 서로 응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유덕자는 반드시 뜻을 같이 하는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니 이는 어디에 거할 때 이웃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 猶親也. 德不孤立, 必以類應. 故有德者, 必有其類從之, 如居之有鄰也.

 

 

주자의 주석이 절묘하다. ‘덕불고, 필유린하면 무조건 로칼리티 (locality)의 문제로 생각하는 상투적 좁은 관념을 벗어나 보이지 않는 추상적 인적 네트워크로 그 함의를 넓힌 것이다. 조그만 동네에서 유덕자로서 이웃과 더불어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덕이 고립되지 않으면 자연히 주변으로 뜻을 같이 하는 휴먼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문화고 사람이 사는 소이연이다. 공자는 평생을 조그만 울타리에서 꼰대노릇을 하고 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한 울타리를 항상 깨뜨리면서 방황한 사람이었다. 도마복음서42에 이런 말이 있다: ‘방황하는 자들이 되라(Be wanderers).’ 방황하는 자가 된다 할지라도 뜻이 있고 덕이 있으면 주변에 사람은 모여들게 마련이다. 그것 이 공자의 학단이었다. 공자의 덕이 불고(不孤)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제자그룹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억지로, 인위적으로 만드는 교회와 같은 조직이 아니었다. 물론 갈릴리에서 예수운동(Jesus Movement)에 참여한 사람들은 오늘의 교회조직과는 차원이 다른 자연발생적 회중이었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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