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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2부 자람 - 4장 세상의 중심이었던 중국, 중화의 축: 촌놈이 세운 대제국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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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2부 자람 - 4장 세상의 중심이었던 중국, 중화의 축: 촌놈이 세운 대제국②

건방진방랑자 2021. 6. 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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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이 세운 대제국

 

 

잠시의 분열기를 끝내고 중국을 재통일한 유방은 기원전 202년 부하들의 추대를 받아 한의 고조(高祖)로 즉위했다. 새 세상이 되었으니 제도도 바뀌어야 했으나 워낙 진시황(秦始皇)이 기틀을 잘 잡아놓은 덕분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한은 진의 중앙 관료 기구인 3공과 9경도 그대로 유지했고, 진의 관료 제도도 거의 답습했다. 손보아야할 것은 행정제도, 즉 군현제였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수백 년간의 분열기를 극복하는 첫 단추는 이미 진의 군현제가 제시한 바 있었다. 다만 군현제는 너무 급진적이었다. 중앙집권제는 필요하지만 군현제처럼 강력한 제도는 부작용이 컸다. 게다가 평민 출신의 한 고조는 진시황보다 권위도 크게 부족했다. 그래서 그는 군현제와 옛 봉건제를 병용해 새로이 군국제(郡國制)를 시행했다.

 

군현제는 전국을 군으로 나누고 그 아래 현을 두는 제도였으므로 중앙집권을 도모하기에 유리했으나, 군국제는 군의 편제만 그대로 두고 지역에 나라[]의 위상을 부여하는 것이었으니 중앙집권을 반쯤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군국제는 수도인 장안(長安) 부근만 중앙집권제로 통치하고 각 지방에서는 봉건제를 실시하는 절충책이었다.

 

사실 오래전 주나라 시대의 봉건제를 재활용하겠다는 고조의 결심에는 논공행상의 문제가 깊숙이 개재해 있었다. 개국에는 공신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을 배려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공신들을 마냥 우대하다가는 지방들이 분립하는 봉건시대로 되돌아갈 우려가 있었다. 따라서 한 고조는 개국공신들만이 아니라 자신의 성씨인 유()씨 일가들도 함께 제후로 봉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그는 차후 중앙 권력의 안정을 기하기 위해 온갖 구실을 붙여 공신 제후국들을 하나씩 제거했다. 하지만 그의 우려는 금세 현실로 드러났다. 지방 관리의 임용이나 재정 등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었던 제후들은 옛날처럼 독립국으로 행세하려 했다. 그래서 고조의 사후에 후임 황제들은 일가붙이인 동성(同姓) 제후국마저 억압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차츰 국가 권력은 자리를 잡아갔지만, 아직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한 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후 중국 역대 왕조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문제였으며, 종국에는 한족 중심의 중화 세계마저도 바뀌게 하는 실로 중요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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