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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종횡무진 동양사, 3부 섞임 - 7장 중국의 화려한 시작과 비참한 종말, 중국으로 몰려오는 하이에나들: 전쟁 아닌 전쟁③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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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3부 섞임 - 7장 중국의 화려한 시작과 비참한 종말, 중국으로 몰려오는 하이에나들: 전쟁 아닌 전쟁③

건방진방랑자 2021. 6. 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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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아닌 전쟁

 

 

이때 동인도회사는 묘수를 생각해냈다. 수출품을 바꾸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잘 먹히는 것으로, 회사는 인도산 아편을 중국에 수출하기로 했다. 아편은 마약이므로 약용 외에는 당연히 수입이 허가되지 않았으나 물불 가릴 것 없는 동인도회사는 밀무역을 통해 중국에 아편을 수출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아편은 무역 역조를 타개하는 주력 상품이 되었다.

 

현대 세계에서 마약 수출국이라면 국제적 왕따를 당해야 마땅하지만 제국주의 시대에 도덕, 그것도 국제적 도덕이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영국으로서는 애써 팔아도 팔리지 않는 모직물과 달리 스스로 시장을 개척하는 신상품 아편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반면 중국에서는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라 중대한 사회문제였다. 아편 중독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1820년대에 들어 드디어 무역 역조가 해소되었다. 은의 흐름은 중국에서 영국으로 바뀌었다. 이제 비상이 걸린 것은 중국이었다아편의 수입은 옹정제 시절부터 도덕과 미풍양속, 국민의 건강을 해친다는 이유를 들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명대 중기 이후부터 급격히 늘어난 사무역, 곧 밀무역은 단속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이미 중국인들의 상당수가 아편에 중독되어 있었다. 청 정부는 아편이 백성들의 심신을 갉아먹을 때는 미지근하게 대처하다가 은의 흐름이 역전되자 적극적인 단속에 나선 것이다. 대책을 논의하던 청 조정에서는 이금론(弛禁論)과 엄금론(嚴禁論)으로 의견이 엇갈렸다. 이금론은 밀무역 자체에 문제가 있으므로 일단 아편 수입을 공식화하고(약재니까!), 지불은 대신 중국산 상품으로 하며, 민간에게는 아편 사용을 용인하되 관리나 군인에게는 금지하자는 주장이었다. 그에 비해 엄금론은 말 그대로 아편 수입을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갑론을박 끝에 결국 엄금론이 채택되었다. 원칙적으로 보면 당연히 엄금론이어야겠지만 그 주장을 실천하려면 힘이 필요했다(어떤 의미에서는 이금론이 당시의 실정에 맞는 현실적인 조치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조정은 즉각 실행에 옮겼다. 1839년 조정에서 파견된 임칙서(林則徐)는 영국 상인들에게서 2만 상자의 아편을 압류해 군중 앞에서 모두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영국 상인들에게 마카오로 철수하라고 명했다. 이제는 전쟁이다! ‘신사의 나라영국은 즉각 무력 도발로 대응했고, ‘양반의 나라중국은 통상 중지와 선전포고로 대응했다. 신경질적인 유럽 챔피언과 점잖은 동양 챔피언,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두 챔피언의 실력이었다.

 

영국 의회는 원정군의 파견을 놓고 논쟁을 벌이다가 표결에 부쳤다. 그 결과 불과 아홉 표 차이로 전쟁이 결정되었다. 의회의 자유주의 세력과 지식인들이 도덕적인 취지에서 전쟁을 반대하기도 했지만, 표 차이가 적었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이 얕볼 수 없는 강적이라는 뜻이다.

 

 

중국의 아편굴 아편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청 조정에서는 아편 흡음자가 늘어나는 것을 커다란 사회문제로 여기고 있었다. 더구나 더 골치 아픈 것은 중국의 상인과 관리까지 아편 밀수로 이득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영국이 아편 수출에 힘썼다 해도 중국이 부패하지 않았다면 효과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인용

목차

연표

십팔사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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