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월의 끝②
551년 아직 소년왕의 티를 벗지 못한 열일곱 살의 진흥왕(眞興王)은 어머니의 섭정이 끝나고 친정(親政) 체제를 시작하자마자 중대한 결심을 굳힌다. 120여 년 동안 신라의 성장에 결정적인 발판을 제공했던 나제동맹을 깨기로 한 것이다. 새는 알을 부수고 나온다. 그 새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했던가? 원래 껍질이란 자신이 연약할 때는 보호막이 되어주지만 더 이상의 성장을 위해서는 깨어져야 하는 법이다. 진흥왕은 기꺼이 아프락사스가 되려 한다. 연호를 개국(開國)으로 바꾼 것은 그런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백제 성왕(聖王, 재위 523 ~554)은 아직 나이 어린 진흥왕(眞興王)이 그렇게까지 노회한 구상을 품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사실 동맹으로 이득을 본 것은 백제도 마찬가지였다. 동성왕(東城王) 때 재건된 백제는 무령왕 대에 다시금 고구려와 맞설 만한 전력을 갖추었다. 이를 바탕으로 성왕은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에게 잃은 반도 중부, 한강 하류의 옛 땅을 수복하고자 한다. 백제가 출발한 곳이자 400년 동안 도읍으로 삼았던 그 고향이 아직도 적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는 것은, 백제의 국왕이라면 당연히 가장 가슴 아픈 일일 수밖에 없다. 538년 성왕은 자신을 지지하는 귀족들이 터전으로 삼고 있는 사비(지금의 부여)로 도읍을 옮긴다. 60년 전 고구려의 남침으로 천도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계획적인 천도다. 무엇을 위한 계획일지는 뻔하다. 때마침 고구려는 최전성기인 장수왕 시대를 정점으로 서서히 약화되고 있는 데다가 북방에 돌궐이라는 새로운 강적의 출현으로 남부 전선이 흐트러져 있었다. 백제에겐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다.
드디어 550년 성왕은 1만의 군대를 주력으로 삼고 신라군과 가야군을 보조로 삼아 북진길에 오른다. 도살성(道薩城, 지금의 천안)을 빼앗아 서전(緖戰)을 성공적으로 장식했으나 그것도 잠시, 고구려는 즉각 역공에 나서서 백제의 금현성(金峴城, 지금의 조치원 부근)을 빼앗으니 피장파장이다. 그러나 방어하는 측은 고구려 하나지만 공격하는 측은 연합군이라는 이점이 있다. 조연들이 이렇게 오프닝을 장식하니 이제는 이 드라마의 주연이 나설 차례다. 진흥왕(眞興王)은 양측 군대가 지친 틈을 타서 이사부를 시켜 기습으로 두 성을 모두 빼앗고 수비병력까지 두어 두 나라의 넋을 빼놓는다. 문제는 백제의 성왕이 여전히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장차 백제가 한강 하류 지역을 수복하는 데 필요한 전초기지를 확보했을 뿐이라는 진흥왕의 발뺌에 성왕은 쉽게 속아 넘어간다. 어차피 성왕으로서는 그 두 성이 최종 목표가 아니었으니 동맹국의 손에 들어갔다고 해서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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