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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종횡무진 한국사, 8부 왕국의 시대 - 1장 왕권의 승리, 3차 왕자의 난②: 안평대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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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8부 왕국의 시대 - 1장 왕권의 승리, 3차 왕자의 난②: 안평대군

건방진방랑자 2021. 6. 1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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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왕자의 난

 

 

그래도 조카의 왕위에 흑심을 품은 삼촌이 없었다면, 혹은 그 삼촌이 하나뿐이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린 왕에게는 삼촌이 무려 열일곱 명이나 있었을뿐더러 (세종은 여섯 아내에게서 열여덟 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 중에서도 첫째와 둘째 삼촌, 그러니까 문종의 바로 아래 동생들인 수양대군과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 ~ 53)은 조카의 왕위 승계를 인정하는 대신 실권을 장악하려 했다. 말하자면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사실상 단종의 섭정을 자처한 셈인데, 어린 왕이 즉위했을 때 삼촌이 섭정을 맡는 것은 오히려 미덕이니까 거기까지는 좋다(원래는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정식 섭정을 맡아야 하겠지만 그녀는 단종을 낳고 사흘 만에 죽었다).

 

조카가 자랄 때까지 서로 사이좋게 권력과 국정을 나누어 맡았다면 아무런 이야깃감도 되지 않았겠으나, 불행히도 두 대군은 권력을 양보할 의사가 없다. 이리하여 끝난 줄 알았던 왕자의 난이 다시 발생한다.

 

먼저 선수를 친 것은 동생인 안평대군이다. 그는 이미 문종의 치세에 황표정사(黃票政事)황표정사란 무슨 기구나 조직이 아니라 문종 대에 있었던 기형적인 인사제도를 가리킨다. 말 그대로 노란 표(황표)’로써 국정을 운영했다는 뜻이다. 몸이 약하면 마음도 약해진다더니, 과연 문종은 재위 시절부터 대가 센 동생들의 등쌀에 힘겨워했다. 그래서 그는 국정에 발언권을 행사하려는 동생들의 요구에 못 이겨 그들이 추천하는 인물을 관료로 임명했다. 하지만 천거하는 인물을 무조건 임용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문종은 그 인명부에서 관리로 발탁할 인물의 이름에 노란 표시를 했는데, 이게 바로 황표다. 정규 임용제도를 무시한 무원칙한 인사행정이었으나 단종도 황표정사를 그대로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다시 왕자들이 정치 일선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태종과 세종이 맏아들 승계의 원칙을 무시하고 즉위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를 장악해서 조정의 요직에 자신의 인물들을 박아넣고, 장차 병약한 형을 대신할 대권후보임을 천명한 바 있다.

 

비록 맏형이 죽은 뒤에도 수양대군이 형으로 있지만 아마 안평대군은 형제 서열 따위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 태종은 다섯째 아들로 즉위했고 아버지 세종은 그의 같은 셋째 아들로서 왕위를 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안평대군이 노리는 것은 왕위 자체가 아니라 실권이니까 형의 눈치를 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안평대군의 꿈 워낙 다재다능한 탓이었을까? 시ㆍ서ㆍ화에 두루 능한 안평대군은 늘 형에게 한발 앞서 있다고 여기며 여유를 보였으나 결국은 경주에서 진 토끼가 되고 말았다. 위가 그가 화가 안견(安堅)에게 자신의 꿈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이고, 아래가 그 그림에 붙인 안평대군의 발문이다. 꿈의 내용은 무릉도원이었으나 그의 운명은 그렇지 못했다.

 

 

인용

목차

연표

단종의 발자취

사육신 퀴즈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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