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2011년 사람여행 - 60. 단종의 애환이 서린 청령포에 가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11년 사람여행 - 60. 단종의 애환이 서린 청령포에 가다

건방진방랑자 2021. 2. 16. 16:39
728x90
반응형

단종의 애환이 서린 청령포에 가다

 

 

단종(端宗)의 비운이 서린 고장, 라디오스타라는 영화의 중심무대인 영월에 왔다. 나의 후반기 여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 그래도 이번 여행을 통해 가고 싶었던 곳을 모두 가볼 수 있어서 정말 여행할 맛이 난다.

 

 

영월에 오고 싶었다

 

영월엔 언젠가 한 번 오고 싶었다. 그건 순전히 영화 탓이다. 밀양은 밀양이란 영화 때문에 가고 싶었던 것처럼, 이곳 또한 영화로 인해 친근감이 느껴져 오고 싶었다. 이곳에 오면 최곤(영화 주인공)’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에 비해 영월읍은 꽤 컸다. 영양군, 봉화군 등 작은 고장들을 지나왔기에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영월에 간다고 하니 꼭 가보라고 추천해준 곳이 있다. 굽이치는 계곡의 절경을 볼 수 있는 청령포(淸冷浦)와 삼촌에 의해 권력의 희생양이 된 단종의 무덤이 있는 장릉(莊陵)이다.

이곳을 찾아가기에 앞서 잘 곳부터 구해야 했다. 잘 곳이 정해지면 짐을 내려놓고 양양게 거리며(전라도 사투리로 활기차게신나게라는 뜻)’ 여기저기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처음에 들어선 교회에서 허락을 받았다.

큰 교회라서 잠자리만 정해주고 전도사님은 사라지셨다. 저녁밥도 아침밥도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어쨌든 잠자리 문제가 해결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이제 홀가분하게 돌아다니기만 하면 된다.

 

 

▲ 청령포를 찾는 사람들. 배를 타고 들어간다. 그들에게 이곳은 어떤 의미일까?

 

 

 

단종의 애환을 따라

 

청령포로 가는 길, 마음을 가다듬고 떠난다. 이곳은 권력의 암투로 희생되었던 단종의 애환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다. 동강 근처에 있던 교회(영월제일교회)에서부터 30분 정도 걸어가니 청령포가 보인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지만 난 곁에서 청령포의 은은한 풍취를 만끽했다.

이곳은 단종이 삼촌 수양대군(세조)에게 왕권을 박탈당하고 유배되었던 곳이다. 삼면이 강으로 막혀 있고 서쪽엔 험준한 산맥인 육육봉(六六峯)이 솟아 있어 탈출할 수 없는 천해의 감옥이다. 나는 빼어난 자연경관에 감탄하며 둘러봤지만, 단종에겐 더없이 슬프고 참담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 청령포는 천해의 감옥이다. 김시습은 멀찍이 단종이 있는지만 보고 돌아서야 했다. 조선의 충절문학을 단종을 통해 볼 수 있다.

 

 

단종이 폐위된 후 사육신(死六臣)은 단종복위운동을 주도하다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였고, 생육신(生六臣)은 두 왕을 섬길 수 없다[不事二君]며 각처로 흩어져 충절 문학을 꽃피웠다.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成三問)은 망나니에 의해 버히기 전에 절명시(絶命詩)한 수를 지었는데, 당당히 죽음을 수용하는 기상이 느껴지는 명시다.

 

 

擊鼓催人命 回頭日欲斜

둥둥 북소리 나의 목숨 재촉하는데 고개 돌리니 해는 저물려 하네

黃泉無一店 今夜宿誰家

황천길에는 주막집도 없을 터 오늘밤은 뉘 집에서 자야 하려나

 

 

생육신으로 유명한 사람은 금오신화(金鰲新話)의 작가로 유명한 김시습(金時習)이다. 김시습은 단종이 폐위된 직후, 출세를 위한 공부를 그만두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방황했다고 한다. 이곳 청령포에 와서 단종을 뵙고자 했으나 출입이 통제되어 멀찍이서 절만 하고 갔다고도 한다.

 

 

▲ 위의 시를 통해서도 드러나듯 성삼문은 세조의 위세와 위력에 굴하지 않았다.

 

 

청령포에 들어가서 단종의 애환을 느끼고 싶었지만, 그냥 멀찍이서 보며 김시습이 느꼈을 통한(痛恨) 같은 걸 느꼈다. 지금 청령포는 한낱 빼어난 자연경관쯤으로 보여 관광지로 각광 받고 있지만, 단종에겐 슬픔과 한이 서린 곳이다. 역사는 이래서 아이러니한가 보다. 슬픔도 어느 순간엔 역사로 치장되어 후세 사람들에겐 하나의 에피소드로 소비되니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잊혀지지 않고 이렇게라도 몇 백년의 격차가 있음에도 후손들이 찾아오는 것이라고나 할까.

 

 

▲ 홀로 청령포에서 셀카 놀이.

 

 

인용

목차

사진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