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세 가지 인식론을 비판하다
합리적 철학에 대한 장자의 비판이 가장 분명하게 전개되어 있는 편이 바로 「제물론(齊物論)」편이다. 그가 얼마나 합리적 철학에 대해 비판적이었는지 보여주고 있는 다음 이야기를 읽어보도록 하자.
설결(齧缺)이 스승 왕예(王倪)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누구나 옳다고 동의할 수 있는[同是] 무엇을 알고 계십니까?”
齧缺問乎王倪曰: “子知物之所同是乎?”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나?”
曰: “吾惡乎知之!”
“선생님께서는 그것을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아십니까?”
“子知子之所不知耶?”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나?”
曰: “吾惡乎知之!”
“그러면 사물이란 알 수는 없는 것입니까?”
“然則物無知耶?”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나?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 말이나 좀 해보세. 도대체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 아는 것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曰: “吾惡乎知之! 雖然, 嘗試言之: 庸詎知吾所謂知之非不知耶? 庸詎知吾所謂不知之非知耶?”
위의 대화를 읽어 보면 설결이 왕예에게 물어본 세 질문들에 대해, 왕예는 단호하게 알지 못한다고 대답한다. 표면적으로는 마치 장자가 지금 왕예의 입을 빌려서 인식의 불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는, 근본적인 회의주의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왕예의 이어지는 언설을 통해 우리의 이런 표면적 인상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금방 드러난다.
우선 설결의 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자. 그의 첫째 질문은 일반성(generality)의 인식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다. 다시 말해 모든 이들에게 동시에 옳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同是]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이것은 이러저러한 인식주관을 떠나서 모든 인식주관이 동의할 수 있는 진리가 있느냐는 객관성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에 대해 모르겠다고 왕예가 대답하자 설결의 둘째 질문이 이어진다. 이 둘째 질문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반성적 인식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도 모르겠다고 왕예는 대답한다.
그러자 설결은 셋째 질문을 통해 근본적 회의주의가 가능하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왕예는 부정하고 있다. 결국 장자는 왕예의 입을 빌려서 객관적 인식, 반성적 인식, 근본적 회의주의를 모두 부정하고 있다.
첫 번째 질문 | 일반성(generality)의 인식 가능성에 대한 질문 |
두 번째 질문 | 반성적 인식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 |
세 번째 질문 | 근본적 회의주의가 가냥하냐는 질문 |
장자는 왕예의 입을 빌려서 언어가 자신의 의미대상과 필연적 관계를 지닐 수 없다는 원론적 이야기를 반복한다. 장자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이 안다고 한 것이 사실은 알지 못하는 것인지 혹은 자신이 모른다고 한 것이 아는 것인지를 확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그의 말은 안다[知]는 것과 모른다[不知]는 것은 언어의 대대[待對] 관계에 의해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을 뿐이라는 함축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언어의 대대 관계란 개념들이 상호 차이와 배제에 의해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선의 의미는 악의 의미에 의존하고, 따라서 ‘악이 아니다’로 정의될 수밖에 없다. 장자는 지금 안다는 것도 모른다는 개념과의 상호의존 관계에 있을 뿐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이 정도의 지적만으로 우리는 장자가 무슨 근거로 세 가지 인식론적 입장을 비판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