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맛있는 걸 줬는데 왜 먹질 못하니
저녁은 원장님과 한국식당에 갔다. 난 육개장을 시켰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그 때 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카작여행 4일차라 아직 한국음식이 그립진 않지만, 원장님이 사주신다기에 냉큼 달려왔다^^
자신만의 방식이 낳는 오해
집으로 흩어진 아이들은 한국 집에 안부전화를 했다. A가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B가 바꿔달라고 하더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나 보다. 요지는 A가 잠도 부족하고 신경이 꽤 날카로워져서 많이 힘들어 한다는 거였다. A의 어머니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걱정이 되어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고, 나 또한 그 이야기를 듣고 황당하여 B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B는 “A가 잠도 부족하고 일정을 진행하다가 신경질을 자주 내며 힘들어해서 어머니께 알려드리려고 했던 거예요. 그래야 어머니도 상황을 알 수 있고 A도 한결 맘이 편해질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거예요.”라고 말했다.
내가 볼 땐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모두 다 힘들어 하는 게 보였을 뿐, A학생만의 문제로 도드라져 보이진 않았다. 즉, 이건 어디까지나 B학생의 ‘생각 없음’이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으로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B는 ‘진정 A가 걱정되어 그렇게 했다’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위해서 그런 행동을 했는데, 그게 역효과가 난 것이다. 그건 곧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장자가 얘기해주는 소통이란
소통이란 무엇인가? 그건 나의 생각이 그대로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데 그게 상대방에겐 부담을 주거나 어떤 저의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을 사게 된다면, 그건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럴 땐 나의 진심을 몰라준 상대방을 탓하기보다 내 방식을 먼저 되돌아보아야 한다. 과연 내 진심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걸 전달하는 방식이 옳았는지 되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옛적에 바닷새가 노나라 대궐에 날아들었다. 노나라 제후가 궐 안에 데려와 술자리를 베풀고 구소의 음악(한국의 정악 & 현대의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며, 가축을 잡아 음식을 제공하며 정성껏 보살폈다. 그러나 새는 곧 어지러워하며 근심과 비탄에 잠겨 감히 고기 한 점 먹지 않았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다가 삼일 만에 죽고 말았다. 이것은 인간을 대접하는 방법으로 새를 대접했던 것이지, 새를 대접하는 방법으로 새를 대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昔者海鳥止於魯郊, 魯侯御而觴之于廟, 奏九韶以爲樂, 具太牢以爲膳. 鳥乃眩視憂悲, 不敢食一臠, 不敢飮一杯, 三日而死. 此以己養養鳥也, 非以鳥養養鳥也. -『莊子』 「至樂」3
노나라 제후는 새에게 잘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최상의 음식과 최상의 향락을 제공한 것이다. 하지만 새는 그런 노나라 제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혀 누리지 않고(or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노나라 제후는 새를 탓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잘해주려 노력했는데, 그 마음을 전혀 몰라주고 죽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니 자신의 문제가 아닌 상대방의 문제라고 몰아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해 장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인간을 대접하는 방법으로 새를 대접했던 것이지, 새를 대접하는 방법으로 새를 대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선 종이 다른 생물로 비유를 들었지만, 실상 사람과 사람으로 치환하여 생각하더라도 큰 차이는 없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잘 해줬는데,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상처를 입거나 다투게 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여우와 두루미 얘기가 절로 떠오른다.
흔히 들었던 예들 중에, 부부가 싸우고 나면 남편은 아내에게 사과의 의미로 선물을 사주거나 외식을 하거나 한단다. 하지만 실상 그건 남편이 생각하는 사과의 의미일 뿐, 아내는 그것에서 전혀 위안을 받지 못한다. 남편의 방식으로 아내에게 손을 내밀지만 그건 서로의 격차만 확인시켜줄 뿐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왜 화가 났는지, 그 속엔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함께 나누고픈 마음이 있었는지 등등의 ‘아내의 방식’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남편의 방식’만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걸 간파하지 못하면 둘의 관계는 영영 회복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B는 A를 위해서 그와 같은 행동을 했을지 모르지만, 정작 그 행동 때문에 A가 더 힘들어 한다면 B는 자신의 소통방법이 문제는 없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그런 고민이 없이 자신의 선의만 믿고 말이나 행동을 하다가는 결국 상대방에게 상처만 한 아름 줄지도 모른다. 소통의 실패는 관계의 단절로만 끝나지 않는다. 한 개체를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고 갈 수 있음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 전화로 우선 안심시켜드리고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겠노라고 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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