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1. 철학이 의미 있어지는 순간
“여러분의 집에는 혹시 가훈이 있습니까?” 강의 시간에 저는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어느 학생은 자기 집의 가훈이 “정직과 인내”라고 말하고, 이어서 다른 학생도 자기 집의 가훈을 소개해주더군요. “하면 된다!”라고요. 저는 속으로 웃음을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자에서는 칸트식의 금욕주의가 느껴졌고, 후자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가주의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정직과 인내’는 좋은 가훈이지만, 무엇인가 종교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습니까? 가족 성원 하나하나보다 가족이란 조직 자체를 위한 규율 같으니까요. 그러나 가훈은 가족 성원 각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조언이어야 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 학생에게 도대체 누구에 대한 정직이고, 무엇을 위한 인내인지를 되물어보았습니다. 학생은 대답을 못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웃음과 즐거움’이라는 가훈이 어떠냐고 그에게 제안을 해보았습니다.
반면 ‘하면 된다!’라는 가훈에는 인문학적 섬세함이나 배려가 결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가훈이 정치적이고 심지어는 전투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은 저만이 느끼는 것일까요? 만약 이 가훈에 입각해서 살아간다면,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에도 의도하지 않은 폭력을 행사하기 쉬울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사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강요하면, 이것은 옛날에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로 미화되던 것이지만 사실 남에게 고통을 주는 스토킹이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두 번째 학생에게 차라리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자!’라는 가훈이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학생들의 가훈을 어느 정도 경청한 뒤, 저는 가훈이 아직 없다고 말한 학생들에게 이런 가훈 하나를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죽을 수도 있다.’ 학생들이 모두 까르르 웃더군요. 가훈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저주나 죽음의 냄새가 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때 저는 정색을 하고 이 가훈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만약 이 가훈대로 여러분의 가족을 한번 만나보세요. 그럼 여러분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어머니가 오늘 음식을 맛없게 만들었다고 해봅시다. 오늘 저녁쯤 어머니가 사고로 갑자기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조금이라도 반찬 투정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먹는 음식이 어머니가 해주시는 마지막 음식이 될 수도 있을 텐데요. 또 자신의 아이가 공부를 못하다고 걱정하는 어머니가 있다고 해보지요. 오늘 낮에 그 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이가 등교할 때 과연 어머니는 “공부 열심히 해. 절대 졸면 안 돼”라고 훈계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보는 아이의 얼굴이 마지막 보는 얼굴일 수도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죽을 수도 있다”라는 교훈은 삶에 지쳐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일깨워주는 묘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철학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2. 시궁창 같은 물에서 피어난 연꽃의 향기만이 그윽하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읽어보았던 이 책은 제가 소개한 가훈과 같은 역할을 하려는 의도 하에 쓰여진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이 어느 정도는 여러분의 삶에 신선한 자극이 되었으리라고 믿습니다. 아니, 어쩌면 많은 분들에게는 낯설고 불편한 느낌, 심지어는 불쾌한 느낌까지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것은 아마도 여러분이 편안하게 여기고 있던 삶을 제가 낯설게 만들었기 때문일 테지요. 그러나 여러분의 낯선 느낌은 사실 여러분 자신으로부터 연유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여러분이 가족, 국가, 자본주의로 요약되는 삶의 환경에 길들여져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물에 사는 것에 편안해지면 물고기는 자신이 물에 산다는 사실을 낯설게 여길 수 없는 법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항상 친숙한 삶의 조건들을 낯설게 만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뿐인 우리의 삶을 소중하게 여길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우리의 삶이 처한 환경은 심한 악취가 풍기는 곳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악취에 너무 노출되어 있어서 우리의 후각이 이미 상당히 마비되어버렸다는 점입니다.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의 말이 떠오르는군요. “우리는 넘어진 곳에서 일어나야만 한다[因地倒者因地起]”고 그 스님은 늘상 강조했거든요. 결국 우리에게는 코를 막고 달아날 곳이 달리 없다는 이야기이지요. 지금 바로 여기, 악취가 풍기는 곳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유일한 터전이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악취가 풍기는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겁니다. 그것은 악취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영원히 좋은 향내만 풍기는 다른 곳을 꿈꾸기만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스님들은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네들은 불교의 가르침을 연꽃에 비유하길 좋아하지요. 그런데 연꽃은 깨끗하고 맑은 물에서는 향내를 풍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직 썩어가는 시궁창 같은 물에서 피어날 때에만 그윽한 향기를 낸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보조국사 지눌이 말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우리가 넘어진 곳에서 일어나야만 하듯이, 악취가 풍기는 곳에서만 그윽한 향기가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삶을 낯설게 보아야만 하는 이유는, 자신이 지금 넘어져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자신이 넘어져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에는 분명 우리의 삶을 낯설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철학은 우리가 넘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철학을 불편하고 불쾌한 학문이라고 느끼기도 합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넘어져 있는 자신을 서 있다고, 그리고 서 있는 사람을 넘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 속에 빠져 있기 때문이지요. 자신이 넘어져 있다는 것을 끝내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누구도 그 사람을 도와줄 수 없을 겁니다. 물론 그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워줄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그에게서 팔을 떼는 순간, 그는 현기증을 느끼며 다시 드러눕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의 삶과 마찬가지로 철학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의지’의 문제일 것입니다.
3. 예상치 못한 일탈을 만끽하길
여러분은 거미가 어떻게 한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옮겨 가는지 압니까? 우선 거미는 자신의 거미줄을 힘이 닿는 대로 허공 속에 뿜어냅니다. 간혹 바람이 전혀 불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의 거미줄은 허무하게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미가 실망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다시 한번 힘을 내어 허공 속으로 거미줄을 뿜어냅니다. 다행히도 이때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럼 이제 그 바람을 타고 거미줄은 다른 나뭇가지에 금방 들러붙습니다. 그런데 거미는 몹시 신중한 동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발을 그렇게 걸린 거미줄에 조용히 갖다대고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불행히도 어떤 사람이 거미줄을 찢고서 걸어갑니다. 다시 거미줄은 땅바닥으로 추락합니다. (……) 마침내 거미는 이제 자신의 줄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유히 곡예를 하듯이 자신이 있던 나무에서 또 다른 나무로 건너가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의 삶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과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최종적인 결말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죽을 것인데, 왜 우리는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분명히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직선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은 항상 새로운 사건과 마주치고, 우리의 경로는 예상치 못한 일탈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점에서 우리의 삶은 거미가 이동하는 것을 닮아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항상 우발성에 노출되어 있고, 항상 낯선 사건과 마주치기 때문이지요. 이 때문에 우리의 삶은 자신의 의지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것이 불행한 일로 보이겠지만, 우리는 이것이 우리 삶에 주어진 축복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수많은 사건이 여러분의 삶을 다채롭고 특이하게 물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글라이더를 타본 적이 있나요? 산 정상이 출발 지점이고, 산 밑에 있는 저 초원이 도착 지점입니다. 행글라이더에 몸을 싣고 산 정상을 박차고 달려가보세요. 여러분은 너무나 많은 바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바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동쪽에서 부는 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 미세하게 진동하듯이 부는 바람, 회오리치듯이 여러분을 휘감는 바람 등등. 그 바람 하나하나를 타게 되면서 여러분의 비행경로는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비행입니까? 비록 우리 모두가 죽음이란 종착역에 도착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 삶은 그 종착역이 아니라 그곳까지 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단숨에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우리가 오늘 다시 힘차게 일어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거미가 다시 힘을 내어 거미줄을 뿜어내듯이 말이지요. 우리의 삶은 예상치 못한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은 과연 어떤 바람을 타게 될까?’ 저는 이 한 권의 책이 여러분에게 근사한 바람이 되어줄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 날아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하루가 새로움으로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라며. (끝)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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