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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삶을 만나다, 제2부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기 - 2장 국가라는 가장 오래된 신화, 덕의 논리와 자발적 복종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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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삶을 만나다, 제2부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기 - 2장 국가라는 가장 오래된 신화, 덕의 논리와 자발적 복종②

건방진방랑자 2021. 6. 2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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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의 논리와 자발적 복종

 

 

동양에서는 덕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로 흔히 누구를 떠올릴까요? 이를테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라는 대하 역사소설의 주인공 유비(劉備, 161~223)유비는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을 통해서 이미 하나의 전설이 되어버린 군주이다. 그는 중국 역사상 가장 덕이 있는 인물로 평가되며 아직도 외적인 통치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희망이자 상징으로 남아 있다. 역사적으로 유비는 삼국 시대를 연 주역 중의 한 명이다. 그는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마침내 삼고초려를 통해서 제갈량이라는 뛰어난 재상을 얻음으로써 촉나라를 창건하여 황제에 오를 수 있었다를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타인의 마음을 얻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삼국지연의의 한 장면을 보도록 합시다.

 

 

저는 만 번 죽어도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미 부인께서는 중상을 입으셨는데, 제가 아무리 청해도 말에 오르지 않으시더니 그만 우물 속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저는 겨우 토담으로 우물을 메운 다음 공자(公子)를 갑옷 속에 품고서 간신히 포위를 뚫고 달려왔습니다.”

雲喘息而言曰: “趙雲之罪, 萬死猶輕! 糜夫人身帶重傷, 不肯上馬, 投井而死. 雲只得推土牆掩之, 懷抱公子, 身突重圍, 賴主公洪福, 幸而得脫. 適纔公子尙在懷中啼哭, 此一會不見動靜, 想是不能保也.”

 

말을 마치고 조자룡이 급히 갑옷을 끌러 품 안에서 아두(유비의 아들)를 꺼내보니, 아두는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며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두 손으로 아두를 받들어 유비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유비는 자신의 아들을 받아들자마자 땅바닥에 내던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까짓 어린 자식 하나 때문에 하마터면 나의 큰 장수를 잃을 뻔했구나!”

遂解視之. 原來阿斗正睡著未醒. 雲喜曰: “幸得公子無恙!” 雙手遞與玄德. 玄德接過, 擲之於地曰: “爲汝這孺, 幾損我一員大將!”

 

조자룡은 황망히 허리를 굽히고 팽개쳐져 우는 아두를 끌어 안고서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였다.

제가 이제 간뇌도지(肝腦塗地)하더라도 주공(유비의 은혜에 보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삼국지연의

趙雲忙向地下抱起阿斗, 泣拜曰: “雲雖肝腦塗地, 不能報也!”

 

 

여러분은 방금 유비가 어떻게 조자룡이란 용맹한 무장의 마음을 얻었는지 보았을 겁니다. 유비는 조자룡에게 자신의 부인과 아들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조자룡은 엄청난 적병 속에서 유비의 부인과 아들을 잃고 헤매게 됩니다. 만약 그들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는 유비의 어떤 책망도 감수해야 할 판입니다. 그러나 운 좋게도 그는 유비의 아들, 즉 유선(劉禪)을 구하는 데는 성공합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지요. ‘아두(阿斗)’라는 아명으로 불리는 유선은 훗날 촉나라의 황제가 되는 유비의 장남이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주군(主君)인 유비의 부인을 지키지 못한 죄 때문에 조자룡의 마음은 조금도 편하지 않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죽음의 형벌을 면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유비는 조자룡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그의 죄를 따지기라도 했습니까? 유비는 오히려 자신이 사랑하는 장남을 바닥에 내팽개치면서 조자룡에게 이야기합니다. “이까짓 어린 자식 하나 때문에 하마터면 나의 큰 장수를 잃을 뻔했구나!” 이로써 유비는 조자룡의 마음을 확실하게 얻는 데 성공한 셈입니다. 자신의 대권을 물려받을 장남보다 조자룡을 아낀다는 마음을 그에게 분명히 보여주었으니까요. 유비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이런 은혜를 베풀었던 사람은 결코 아닙니다. 그는 오직 자신에게 결정적으로 도움을 줄 만한 사람에게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아마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방금 살펴본 조자룡과 제갈량(諸葛亮, 181~234) 정도일 것입니다. 유비는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만 시혜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마치 자본가가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에만 투자를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렇게 유비는 조자룡에게 뜻밖의 은혜를 베풂으로써, 그가 평생 동안 유비와 그의 아들에게 충성하도록 만들어버립니다. 이제 유비는 조자룡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이지요. 조자룡은 자신의 충성이 외적인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유비의 은혜는 조자룡으로 하여금 자발적 복종을 유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빼앗기 위해서는 먼저 주어야만 한다는 노자의 원리, 즉 수탈하기 위해서는 재분배해야 한다는 국가의 원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비는 아마 이 원리를 가장 성공적으로 실행에 옮긴 정치가였을 겁니다. 이 점에서 볼 때 유비의 자()현덕(玄德)’이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현덕이란 말은 노자가 지은 도덕경에 등장하는 유명한 말로, ‘검은 덕은 다른 사람이 그 속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어서 일견 어두워 보이는 덕을 의미합니다. 이 점에서 유비만큼 스스로 은미한 밝음의 논리를 잘 실현시킨 사람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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