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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철학 삶을 만나다, 제3부 삶을 위한 철학적 성찰 - 1장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 집착의 메커니즘 본문

책/철학(哲學)

철학 삶을 만나다, 제3부 삶을 위한 철학적 성찰 - 1장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 집착의 메커니즘

건방진방랑자 2021. 6. 2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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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의 메커니즘

 

 

어떤 젊은 엄마가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녀는 옆에 잠들어 있는 아이를 바라봅니다. 갓 돌이 지난 귀여운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천사입니다. 그러나 곧 그녀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설마 하며 아이의 몸을 만져 보니, 목숨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그녀의 천사가 싸늘하게 식어 있었습니다. (……) 그리고 아이를 화장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시장에 갔다가 돌아와 문을 열고 장난스런 목소리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우리 왕자님, 많이 기다렸지. 엄마 왔네.” 그러나 거실 한쪽의 조그만 상 위에 있는 아이의 영정과 국화꽃을 보고, 그녀는 허물어지듯이 주저앉고 맙니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의 눈에는 맑은 물처럼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세상의 어느 고통을 이 젊은 엄마의 고통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놀이터에 나가 노는 아이들만 봐도 마음이 쓰리도록 아픕니다. 모두 태웠다고 생각했는데, 청소를 하다가 아이가 신었던 작고 앙증맞은 양말 하나를 발견하고는 다시 울음을 터뜨립니다.

 

자식을 잃은 그녀의 고통은 과연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일까요? 자신이 사랑하던 아들이 죽었고, 그래서 지금은 그녀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일까요? 그런데 사정은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될 수 없습니다. 그녀의 진정한 고통은 오히려 그녀 마음속에 아직도 자신의 아들을 품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육체적으로는 아들을 떠나보냈지만, 마음으로는 여전히 아들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음속의 아들과 마음 바깥의 아들! 마음 바깥에서는 분명 아들이 존재하지 않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아들이 여전히 해맑은 미소를 띠며 웃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엄청난 차이, 이 엄청난 간극이 그녀가 겪고 있는 고통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크나큰 간극은 그녀가 마음속의 아들을 떠나보내지 않았기에 생긴 것이겠지요. 이것이 바로 부처가 말한 집착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집착은 이보다 훨씬 더 강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제 어떤 모양을 띠게 될까요?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병적인 수준에까지 이른 집착의 사례를 하나 생각해보도록 하지요. 어느 날 아침 너무나 애석하게도 그녀의 아이가 죽은 채로 발견됩니다. 그러나 앞의 경우와는 달리 이 엄마는 아이가 아직 살아 있다고 굳게 믿고 생활하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 그녀는 죽은 아이가 살아 있다고, 그리고 지금 잠시 침대에 누워 있다고 확고하게 믿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매번 아이가 밥을 먹을 때가 되면, 아이가 먹을 밥을 정성스레 준비해 가져다주곤 합니다. 물론 이제 썩어가면서 악취를 풍기는 아이가 그것을 먹을 리 만무합니다. 그러나 아이의 엄마는 해맑은 미소로 밥상을 들고 나가며 말하곤 합니다. “먹고 싶지 않은가 보구나. 그럼 저녁때는 네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만들어 줄게.” 아이를 잃은 엄마의 이런 병적인 집착은 정상적인 집착에 비해 너무나 비극적이면서, 동시에 서늘한 공포심마저 들게 합니다. 이 경우 엄마는 마음속의 아이뿐만 아니라 마음 바깥의 아이도 떠나보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마음속의 아이와 마음 바깥의 아이 사이의 간극을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사랑스런 내 아이는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면, 내 마음 바깥에도 항상 있어야 돼!’

 

방금 우리는 집착의 두 가지 사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철학적으로 마음의 고통과 집착의 메커니즘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베르그손(H. Bergson, 1859~1941)베르그손은 당대 자연과학의 업적을 비판적으로 섭취하여 거대한 생명과 생성의 형이상학을 완성했다. 그에 따르면 생명현상은 우리에게 창조적 진화라는 놀라운 과정을 보여주며, 유기체의 발생 과정은 개체 차원에서나 종의 차원에서도 생명의 약동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주요 저서로 창조적 진화, 물질과 기억, 사유와 운동등이 있다이란 철학자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봅시다. “없음은 있음보다 하나가 더 있다는 그의 난해해 보이는 주장은 집착의 본질을 성찰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기억이나 기대를 가지지 않은 존재들은 결코 비어 있음이나 없음과 같은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들은 단지 있는 것과 지각되는 것만을 표현할 것이다. 그런데 있는 것과 지각되는 것은 이러저런 사물의 현존이지 결코 어떤 것이든 그것의 부재는 아니다. 기억하고 기대하는 능력이 있는 존재에게만 무엇이 없다는 것이 가능하다. 아마 그는 어떤 대상을 기억하고 있어서 그것과 만날 것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대상을 발견한다. 이때 그는 기대를 좌절시키는 것 앞에서 원래의 기억을 상기하게 되고, 자신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자기는 없음과 조우했다고 말하게 된다. (……)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된 대상의 관념 속에는, 같은 대상이 존재한다고 생각되었을 때의 관념보다 더 적은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왜나하면 존재하지 않는대상의 관념은 필연적으로 존재하는대상의 관념에 더하여, 다른 것에 의해 그 대상이 없어졌다는 표상까지 합쳐진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적 진화(L‘évolution créatrice)

 

 

베르그손은 집착이란 현상이 인간에게는 불가피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을 가지고 있고, 또 그 기억에 따라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저는 오후 3시에 어떤 친구를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불행히도 갑자기 일이 생겨 10분 정도 늦게 그 카페에 헐레벌떡 뛰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만나기로 한 그 친구가 그곳에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 없네.’ 베르그손은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가 다른 무엇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에게는 기억과 기대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도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한 것을 기억할 수 있었고, 또 그 때문에 약속 시간보다 이미 십여 분이 지난 그 시간에 카페에 친구가 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가 없네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는 말이죠. 이런 저의 생각을 베르그손의 말로 풀어본다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나의 기억이나 기대에 따르면 그 친구는 지금 카페에 있어야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는 이곳에 없네.’

 

만약 제가 친구와의 약속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물론 친구와의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는 그가 약속 장소에 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 제가 친구와의 약속 자체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우연히 그 카페에 들어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까처럼 저는 친구가 없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니 이런 생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해야겠죠. 그냥 저는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없음혹은 ()’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기억하거나 기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르그손은 없음은 있음보다 하나가 더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친구가 없네라는 생각은 결국 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 없네라는 생각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니까요. 베르그손의 이야기에서도 우리는 마음속에 있다는 사태와 마음 바깥에 있다는 사태 사이의 차이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친구가 없네라는 생각은 결국 내 마음속에서는 그가 있어야만 하지만, 내 마음 바깥에서는 그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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