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열하로 가는 ‘먼 길’
요동에서 연경까지
압록강에서 연경까지가 약 2천여 리. 연경에서 열하까지가 약 700리. 토탈 육로 2천 700여 리. 상상을 초월하는 거리다. 낯설고 이질적인 공간은 언제나 모험의 대상이다. 공간적 이질성이 주는 장벽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여행은 불가능하리라. 다른 한편 두려움과 경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 여행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스릴도, 서스펜스도 없다면, 대체 뭐 때문에 여행을 한단 말인가?
강을 건너 요동으로, 요동벌판을 지나 성경(지금의 심양)을 거쳐 북경 관내에 이르는 약 2천여 리의 여정은 어드벤처의 연속이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 몸서리 쳐질 만큼 엄청난 폭우, 산처럼 몰아치는 파도 등 대륙의 위력은 만만치 않았다. 강을 건너는 때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소낙비는 이후에도 내내 일행을 괴롭힌다. 천 리 밖에 폭우가 내리면 하늘이 더없이 청명해도 시내에는 집채만 한 파도가 몰아친다니, 강의 스케일이 우리의 상상으론 가늠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땅의 기운도 거칠기 짝이 없어 요동 진펄 천리는 이른바 ‘죽음의 늪’이다. 흙이 떡가루처럼 보드라워 비를 맞으면 반죽이 되어 시궁창이 되어버린다. 산서성 장사꾼 20명이 건장한 나귀를 타고 오다. 한꺼번에 빠져 졸지에 사람도 말도 보이지 않는 지경이 되었건만 지척에서 뻔히 보면서 구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
특히 연암은 비대한 몸집에 더위를 견디지 못하는 체질이라, 그 괴로움은 몇 배 더하였다. 중국인 뱃사공의 등에 업혀서 건너기도 하고, 강 한가운데 모래사장에 갇힌 채, 뱃사공이 없어 쩔쩔 매기도 했다. 연암은 그 과정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포착한다.
「도강록(渡江錄)」에서 파도가 산처럼 밀려오는 강을 건널 때의 광경이다.
창대는 말 대가리를 꽉 껴안고 장복은 내 엉덩이를 힘껏 부축한다. 서로 목숨을 의지해서 잠시 동안의 안전을 빌어본다.
昌大緊擁馬首 張福力扶余尻 相依爲命以祈.
말이 강 한가운데에 이르자, 갑자기 말 몸뚱이가 왼쪽으로 쏠린다. 대개 말의 배가 물에 잠기면 네 발굽이 저절로 뜨기 때문에 말은 비스듬히 누워서 건너게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하마터면 물에 빠질 뻔하였다. 마침 앞에 말꼬리가 물 위에 둥둥 떠서 흩어져 있다. 급한 김에 그걸 붙들고 몸을 가누어 고쳐 앉아서 겨우 빠지는 걸 면했다. 휴~ 나도 내 자신이 이토록 날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창대도 말 다리에 차일 뻔하여 위태로웠는데, 말이 갑자기 머리를 들고 몸을 바로 가눈다. 물이 얕아져서 발이 땅에 닿았던 것이다.
馬至中流 忽側身左傾 盖水沒馬腹則四蹄自浮 故臥而游渡也 余身不意右傾 幾乎墜水 前行馬尾散浮水面 余急持其尾 整身一坐 以免傾墜 余亦不自意蹻捷之如此 昌大亦幾爲馬脚所揮 危在俄頃 馬忽擧頭正立 可知其水淺著脚矣.
이 장면을 읽을 때마다 나는 그 아슬아슬함에 손에 땀을 쥐면서도, 한편으론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창대, 장복이, 말, 그리고 연암이 서로 뒤엉켜 물을 건너는 모습은 그렇다치고, 물에 빠질뻔하자 잽싸게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말꼬리를 잡고 몸을 가누는 연암의 순발력은 정말 한 편의 만화 아닌가. 또 자신의 재빠름에 감탄하는 모습은 더 가관이다. 스릴과 유머의 기묘한 공존!
책문에 들어선 뒤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길에서 비를 만나 5~6일을 여관에서 허비하게 되자 연암의 삼종형인 정사 박명원의 마음은 점점 초초해진다. 마침내 그는 결단을 내린다. “나랏일로 왔으니 설사 물에 빠져 죽는다 해도 그것이 내 본분이니, 다른 도리가 없네[吾爲王事來 溺死職耳 亦復柰何].” 이러니 누가 물이 많아서 건너지 못하겠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마침내 악천후를 무릅쓴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그 정황이 얼마나 절박하고 위급했던가를 연암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물을 건널 때면 모두들 눈앞이 캄캄하여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이때 하늘을 우러러 잠깐이나마 목숨을 빌지 않은 자가 없었다. 간신히 건너편에 도달한 뒤에야 비로소 서로 돌아보며 위로하고 기뻐하기를 마치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온 듯이 했다. 설상가상으로, 다시 앞에 있는 물이 이미 건너온 물보다 더 험하다는 말을 들으면 서로 마주 보며 아연실색할 뿐이었다.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其渡水之際 莫不震掉嘔眩失色 仰天潛禱其須臾之命者 數矣 旣至彼岸 方相顧慰賀 如逢再生之人 而又報前水尤大於此河 則相顧已索然意沮
한마디로,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이 숨돌릴 틈 없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하긴 그 광대무변한 중원천지를 오직 말과 배, 발품만으로 관통하려니 이 정도의 모험이야 감수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터, 이때 여행은 삶 그 자체가 된다. 생사가 엇갈리는 이 순간들이야말로 일상의 따분함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삶의 새로운 경계가 아니겠는가.
아무튼 정사는 멈추지 않는다. 최고 책임자의 입장으론 제날짜에 연경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건 곧 왕명을 거역한 ‘반역행위’이기 때문이다. 수행원들의 두려움과 불평을 “제군들은 걱정말게나. 이번에도 왕령(王靈)이 도우실 게야[諸君無慮也 莫非王靈也].”하고 잠재워가면서 전진을 계속한다. 하지만 불과 몇 리도 못 가서 다시 물을 건너게 되고, 어떤 땐 심지어 하루에 여덟 번이나 건너기도 하였다. 하루에 여덟 번이나 강을 건너다니! 공수특전단 지옥훈련도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하긴 열하로 갈 때는 하룻밤에 아홉 번을 건너기도 하니, 그 정도는 약과인 셈이다. 이리하여 쉴참(중간 휴게소)을 건너뛰어가며 쉴새없이 달리니, 말들은 더위에 쓰러지고, 사람 역시 모두 더위를 먹어 토하고 싸면서 마침내 연경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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