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밤중에 홍두깨
그러나 황제는 연경(북경)에 있지 않았다. 열하에 있는 피서산장에가 있었던 것이다. 사신 일행은 그저 제날짜에 도착하여 예만 표하면 그뿐이라고 여긴 탓에 이 문제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정사만은 연경에 오는 도중 혹 열하까지 오라는 명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근심을 놓지 않긴 했다. 그러나 연경에 도착하여 나흘 동안 별일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을 놓는 순간, 사태는 예기치 않게 꼬이기 시작했다. ‘예부에 가서 표자문(表咨文)을 내고’ 숨을 돌리는 사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일이 벌어진다.
깊은 밤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요란스레 들려온다. 자다가 놀라 깨어나면서 연암은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안 그래도 관문이 깊이 잠긴 것을 생각하면서 역사적인 변고를 떠올렸던 참이다. 원(元)나라가 망할 때, 마지막 황제 순제가 북으로 도망가면서 그제야 고려의 사신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니 사신이 관문을 나온 뒤에야 비로소 명나라의 군대가 온 천하를 점령한 줄 알았고, 가정제(嘉靖帝) 때에는 달단족(韃靼族, 타타르족)이 갑자기 수도를 에워싼 일이 있었으며 등등, 식자우환(識字憂患)!
아무튼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이번에도 변고는 변고였다. 누군가 “이제 곧 열하로 떠나게 되었답니다[卽今赴熱河矣].”라는 전갈을 알려왔다. 통관을 비롯한 사행단원들은 가슴을 두드리며 울부짖고 난리가 아니다. 겨우 목숨을 걸고 왕명을 수행했는데 다시 저 아득한 북쪽 땅 열하까지 어떻게 간단 말인가.
그런데 연암은 이 상황에서 느닷없이 ‘악동기질’을 발휘한다. 수행원인 내원과 변계함이 놀라 깨어서, “관에 불이 났소[館中失火耶]?” 하자, “황제가 열하에 거둥하여 연경이 비어서 몽고 기병 십만 명이 쳐들어 왔다오[皇帝在熱河 京城空虛 蒙古十萬騎入].”하고 장난을 친다. 앞서 떠올렸던 불길한 예감들을 십분 응용(?)하여 불난 데 부채질을 한 것이다. 속아 넘어간 수행원들은 기절초풍하기 직전이다. 이어지는 통곡소리 “아이고!” 그것이 거짓말임을 알았을 때 대체 어떤 표정들을 지었을지.
바삐 상방으로 가니 온 객관이 물끓듯 한다. 역관들이 달려와 모두 황급하여 얼굴빛을 잃은 채, 혹은 제 가슴을 두드리고 혹은 제 뺨을 치며 혹은 제 목을 끊는 시늉을 하며, “이젠 카이카이(開開)요[乃今將開開也]” 한다. ‘카이카이’란 ‘목이 달아난다[斬斷]’는 말이다. 연유를 캐고 보니 그럴 만했다. 황제가 사신을 기다리다가 예부가 멋대로 결정하여 표자문만 올린 것을 알고서는 노하여 감봉 처분을 내렸다는 것이다. 예기치 못한 황제의 분노 앞에서 상서(尙書) 이하 연경에 있는 예부관원들이 부들부들 떨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진동이 열하에서 연경까지 삽시간에 전해져 지금 이 객관까지 도달한 것이다. 황제의 분노를 가라앉힐 방법은 오직 하나, 얼른 짐을 꾸려 떠나는 것뿐이다.
▲ 북경성(北京城)
세계제국 청나라의 궁성답게 장쾌한 스케일과 화려한 스펙터클을 한껏 뽐내고 있다. 여기에 비하면 경복궁이나 창경궁은 후원쯤으로 느껴질 정도다. 지금 봐도 그러니, 18세기 당시 조선 사행단이 이곳을 통과할 때 얼마나 압도당했을지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제행무상이라고, 불과 150년도 안 돼 제국은 무너지고, 자금성은 한낱 관광지로 전락하게 될 줄이야 누군들 짐작이나 했을까. 『열하일기』 「황도기략(黃圖紀略)」에 당시 북경의 곳곳이 손금보듯 상세히 스케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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