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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3부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 - 2장 열하로 가는 ‘먼 길’, 열하로 가는 험난한 여정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3부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 - 2장 열하로 가는 ‘먼 길’, 열하로 가는 험난한 여정

건방진방랑자 2021. 7. 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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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로 가는 험난한 여정

 

 

물론 이건 수난의 서곡에 불과했다. 북방의 기후는 한마디로 예측불허 그 자체였다. 느닷없이 구름이 덮여 하늘은 깜깜해지고 바람이 삽시간에 모래를 날려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으니, 하루에 도 천국과 지옥을 수시로 오르내려야 했다.

 

 

중류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남쪽에서 한 조각 검은 구름이 거센 바람을 품고 밀려왔다. 삽시간에 모래를 날리고 티끌을 말아올려 자욱한 안개처럼 하늘을 덮어버리니,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배에서 내려 쳐다보니 하늘빛이 검푸르다. 여러 겹 구름이 주름처럼 접힌 채, 독기를 품은 듯 노여움을 발하는 듯 번갯불이 번쩍번쩍하고 벽력과 천둥이 몰아쳐 마치 검은 용이라도 튀어 나올 듯한 모습이다.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方渡至中流 忽有一片烏雲裹黑風 自西南漂轉而來 飛沙揚塵 如烟如霧 頃刻晝晦 莫卞咫尺 旣下船 仰視天色 黝碧紺黛 而層雲襞摺 亭毒弸怒 電縈其間 如縢金線 爲千朶萬葉 霆車雷鼓 旋輾鬱疊 疑有墨龍跳出也

 

 

납량특집 뺨치는 배경 아닌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선 사신들을 빨리 오게 하라는 황제의 재촉이 들이닥치자, 그야말로 일행은 눈썹을 휘날리며달려가야 했다. 조선에 대한 황제의 과도한 편애가 오히려 화근이었던 셈이다. 황제는 조선 말이 좀 질이 떨어지는 종자라 판단하여 건장하고 날랜 말을 제공하라는 명령까지 내린다. 연암이 보기에도 중국 말은 조선 말과는 종자가 달랐다. 한 시간에 70리를 간다는 중국의 말은 노래하듯이 선창을 하면 뒤에서는 마치 범을 쫓듯이 응한다. 그 소리가 산골과 벼랑을 울리면 말이 일시에 굽을 떼어 바위나 시내, 숲이며 덩굴을 가리지 않고 훌훌 뛰어오르며 쏜살같이 내달린다. 그 달리는 소리가 마치 북을 치듯 소낙비가 퍼붓듯 거침이 없다[前者唱聲若歌 後者應號 如警虎者 響震崖谷 馬乃一時散蹄 不擇岩壑磎磵林木叢薄 超躍騰踏 如鼓聲雨點].” 이름하여 비체법(飛遞法), 그런 반면, 조선의 말은 마치 쥐처럼 잔악한 과하마인 데다 견마 잡히고서도 오히려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실정이다. 그러니 만일 황제의 명령으로 청국의 말이 제공된다 한들 누가 바람처럼 달리는 역마를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지 말이 제공되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불행 중 다행!

 

밀운성 밖에서 또 한번 위기에 직면한다. 밀운성 밖을 감돌아서 7~8리를 갔을 즈음 별안간 건장한 호인(胡人) 몇이 나귀를 타고 오다가 손을 내저으며, “가지 마시오. 앞으로 5리쯤에 시냇물이 크게 불어서 우리도 모두 되돌아오는 길이오[勿去也 前去五里所 溪水大漲 吾們還來也 ].” 한다. 이에 서로 돌아보며 낯빛을 잃고 모두 길 가운데에 말을 내려 섰으나, 위에서는 비가 내리고 아래로는 땅이 질어서 잠시 쉴 곳도 없다. 그제야 통관과 역관들을 시켜서 물에 가보게 하였다. 그들이 돌아와서는, “물 높이가 두어 발이나 되어 어찌할 수 없습니다[水高二丈 無可柰何].” 한다. 버드나무 그늘이 촘촘하고, 바람결이 몹시 서늘한 데다 하인들의 홑옷이 모두 젖어서 덜덜 떨지 않는 자가 없다.

 

결국 밀운성으로 다시 들어갔으나 밤이 깊어 집집마다 문을 걸어 잠갔으므로 백 번 천 번 두드린 끝에 간신히 한 아전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겨우 지친 몸을 추스리고 있던 차, 또 다시 황제의 군기대신(軍機大臣)이 들이닥친다. “황제께옵서 사신을 고대하고 계시오니 반드시 초아흐렛날 아침 일찍 열하에 도달하여 주시오[皇帝苦待使臣 必趁初九日朝前 達熱河].” 두세 번 부탁하고는 쏜살같이 돌아간다. , 이 스트레스를 뭐에 비할 것인가.

 

마음은 한층 바빠졌건만, 때는 바야흐로 새벽녘이어서 물도, 땔나무도 없으니 밥을 지을 길이 없다. 하인들은 모두 춥고 굶주려서 혼수상태에 빠졌다. 연암은 그들을 채찍으로 갈겨 깨웠으나 일어났다가 곧 쓰러지곤 한다. 하는 수 없이 몸소 주방에 들어가 살펴본즉 하인 영돌이만 홀로 앉아 공중을 쳐다보면서 긴 한숨을 뽑는다. 남은 사람들은 모두 종아리에 고삐를 맨 채 뻗어서 코를 골고 있다. 마침 간신히 수숫대 한 움큼을 얻어서 밥을 지으려 했으나 한 가마솥의 쌀에 반 통도 못 되는 물을 부었으니 끊을 리가 없다. 결국 밥 한숟갈도 들지 못한 채, 연암은 형님인 정사와 함께 술 한 잔씩을 마시고 곧 길을 나섰다. 먼데 닭이 홰치는 소리를 들으며.

 

그 와중에 연암의 견마잡이 창대가 강을 건너다 말굽에 밟히는 사고가 발생한다. 마철(말 편자)이 깊이 들어 쓰리고 아파 촌보를 제대로 옮기지 못하게 되었다. 연암은 하는 수 없이 기어서라도 뒤를 따라 오게 하고 스스로 고삐를 잡는다. 동정하고 말고 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길을 나서자마자 사나운 물결이 길을 깊이 파간 바람에 어지럽게 흩어진 돌들이 이빨처럼 날카로웠다. 손에는 등불 하나를 가졌으나 거센 새벽 바람에 꺼져버렸다. 그리하여 다만 동북쪽에서 흘러내리는 한 줄기 별빛만을 바라보며 전진하였다. 몹시 춥고 주린 데다 발병까지 나고 잠도 제대로 못 잔 창대가 이 차가운 물을 또 건널 생각을 하니 연암의 마음은 쓰라리다.

 

하지만 창대를 걱정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야 할정도로 일정이 빡빡했기 때문이다.

 

 

(강물을) 아홉 번이나 건너고 나서야 겨우 물을 벗어날 수 있었다. 물 밑바닥의 돌에 이끼가 끼어서 몹시 미끄러운 데다 물이 말의 배까지 넘실거리는 바람에 다리를 옹송그리고 두 발을 모은 채 한 손으론 고삐를 잡고 또 한 손으론 안장을 꽉 잡았다. 끌어주는 이도 부축해주는 이도 없건만, 그래도 떨어지지 않는다.

凡一水九渡 水中石苔滑 水沒馬腹 攣膝聚足 一手按轡 一手握鞍 無牽無扶 猶免墜跌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라는 유명한 문장은 이런 어드벤처를 대가로 해서 탄생한 것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체험 속에서 획득된 삶의 지혜, 그것의 표현으로서의 문(), 거기에 비하면 삶과 유리된 채, 그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쪼가리 지식들을 엮는 우리들의 글쓰기는 취미 활동에 불과하다. 애꿎은 나무들만 고달프게 만드는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따름인저!

 

그나마 다행인 건 창대가 다시 일행에 합류한 것이다. 열하에 가까워질 즈음 별안간 창대가 말 앞에 나타나 절한다. 사연인즉, 청나라 제독이 지나갈 때 길가에서 서럽게 울부짖으니 제독이 말에서 내려 위로하고 친히 음식까지 권한 뒤, 자기가 탔던 나귀를 주어 가게 했다는 것이다. 나귀가 어찌나 날래던지 다만 귓가에 바람소리가 일 뿐이었다나. 연암은 이국의 한 마부를 위하여 극진한 친절을 베푼 제독의 대국적 풍모에 감탄한다. 덕분에 큰 사고가 없었으니 그나마 운이 좋았던 셈이다.

 

 

 

 

인용

목차

열하일기

문체반정

박지원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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