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도올선생 중용강의, 서설 - 3. 인간 세계를 이루는 두 축, 예(禮)와 악(樂)②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서설 - 3. 인간 세계를 이루는 두 축, 예(禮)와 악(樂)②

건방진방랑자 2021. 9. 15. 11:53
728x90
반응형

 

서설 3. 인간 세계를 이루는 두 축, ()와 악()

 

 

 

 

 

사람은 군집하여,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야 하기에, 예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여타 동물과 다른 존재로 발돋움하게 하는 악()

 

인간은 자유의지(free will)를 가진 동물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식물은 추위가 오면 잎이 떨어져야지 안 떨어지겠다고 폼 잡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식물은 자유의지가 없어요. 자연의 변화에 대해서 그대로 반응(Reaction)을 하는 겁니다. 소나무도 독야청청(獨也靑靑)한다고 하지만 성격이 다를 뿐 변화를 그대로 다 받아요. 추우면 추운데 따라서 거기에 맞게 조절(adjust)을 합니다. 나무를 잘라보면 나이테라는 것이 있는데 추울 때 성장한 부분과 더울 때 성장한 부분이 다릅니다. 식물은 자연법칙에 따라 그에 대응하는 필연적 법칙(necessary law)을 갖는 것이죠.

 

이에 반해 인간은 이런 자연의 변화와 질서 속에 있으면서도 추우면 춥게 살질 않고 히타를 틀고 오바를 입습니다. 즉 인간은 자연의 변화에 대해서 거역하면서 사는 거예요. 겨울에 따뜻한 옷을 입는 것 자체가 자유의지입니다. 겨울에는 춥게 살아야하는 것인데,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자연의 변화에 대해서 자기 나름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고 자유의지를 구사해 나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란 필연(necessity)의 세계 속에 있으면서 자기가 콘트롤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연이란 신이 있다면 인간이라는 우주는 또 하나의 신이예요. 인간은 자기의 세계를 자기가 운영(manage)하는 아주 독특하고도 유일한(unique)한 동물입니다.

 

 

[매트릭스]의 명장면, 자유의지. 생에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예()와 악()의 관계

 

예악(禮樂)’에서 예()는 필연적인 법칙적 세계에서의 분화를 추구하며, ()은 자유의지의 세계와 타인과의 동화를 추구합니다. 사람들은 왜 노래를 부를까요? 서태지는 왜 인기가 있습니까? 노래 부르는 순간에는 인간이 모두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분별심이 없어지고 같이 기쁘게 어우러져 동화가 되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바카스 컬트(Bacchus cult) 같은 것은 전부 예()의 세계가 아니고 악()의 세계입니다. 그것은 극단적인 난교(Orgy)의 세계예요. 구약성경에 의하면 가을 추수 때 들판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모여서 노래 부르고 술 마시고 혼음의 축제가 벌어집니다. 최근에 개봉된 여왕 마고라는 영화에 번지르르하게 술 마시고 섹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당시에 아주 평범한 생활이었어요. 거기에서 벌어지는 모습들은 모두 바킥컬트(Bacchic Cult)로부터 내려오는 올지전통입니다. 동양에도 이런 전통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고려말의 연등회니 팔관회니 하는 게 별 게 아니고 그게 다 올지라고. 절간에서 탑 주위를 빙빙 돌다가 뭐 하겠어요. 쓰러져서 서로 쑤시는 거지 뭐! ()의 세계가 아니고 악()의 세계란 말이죠. 여자들이 상당히 예()에 갇혀 살다가 악()의 세계로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 바로 연등회의 탑돌이입니다. 이렇듯 예악이라는 것은 인간사회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두 측면인 것입니다.

 

()만 있으면 인간세상이 혼돈(Chaos)로 가고 무정부로 가며, ()만 있으면 질서 속에 완전히 고착이 되어 파멸이 되어 버리고 말지요. 그래서 항상 이 예()와 악()의 문제를 어떻게 적절하게 조정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중용(中庸)의 문제의식입니다.

 

중용(中庸)이라는 개념도 바로 이 예()와 악()에서 나오는 거예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논어(論語)에 나타나 있는 예악(禮樂)이라는 말은 그런 추상적인 개념으로 나오지 예경(禮經), 악경(樂經)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고 나는 판단합니다. 이런 것들은 매우 쉽게 확인할 수 있어요. 하버드-옌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에서 나온 일자색인(一字索引)’에서 예()나 악()의 용례를 찾으면 쭉 나오는데, 그것들의 텍스트 상에서의 용법을 다 찾아보면 논어(論語)전체에서 예(()이 어떻게 쓰였는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악(禮樂)이라는 말은 대개 추상적인(Abstract) 사회적 측면을 나타내는 말로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에 관해서는 많은 문헌이 남았지만 악()에 대해서는 문헌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시·····춘추의 육예(六藝) 중에서 악경(樂經)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므로 육예(六藝)에서 악()이 빠져서 오경(五經)이 되는 것입니다.

 

  () ()
우주론
(宇宙論)
인성론
(人性論)
上焦 下焦
由中出 自外作
動於內 動於外
사회론
(社會論)
必易 必簡

출처- 논어한글역주, 598.

 

 

악은 한껏 눌리고 한껏 구색을 차린 것들을 무너뜨리고 원초적인, 삶의 지향성으로 되돌린다.

 

 

 

인용

목차

전문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