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남겨진 모습을 담다
과정록 자서(過庭錄 自序)
박종채(朴宗采)
嗚呼! 自內舅芝溪公沒, 先君誌狀之述, 屬托無處. 不肖始乃欲裒輯遺事, 傳道後承, 而顧惟識見淺陋, 筆墨荒短, 見聞所及多所墜失.
嘗讀古人所述家庭文字. 如邵氏聞見之錄, 呂氏家塾之記, 類多不棄瑣細而悉書之, 其想像遺徽, 反有勝於謹嚴之作. 於是, 竊倣其法例而爲之, 片紙寸藁, 隨得隨藏, 如古人盎葉之書.
自癸酉春, 始今四年矣, 乃删其繁縟, 去其重複, 凡二百有餘條. 頗有據聞直錄, 若欠愼重, 而未敢輒事刪削者, 以先君之風采神韻, 猶或可想見於此等處, 覽者或恕之歟?
丙子孟秋, 不肖男宗采泣血謹書.
해석
嗚呼! 自內舅芝溪公沒, 先君誌狀之述, 屬托無處.
아! 외삼촌[內舅] 지계공(芝溪公) 이재성(李在誠)께서 돌아가시고부터 선군의 지장(誌狀)【지장(誌狀): 고인의 성명과 나고 죽은 날, 행적, 무덤의 소재 등을 적은 글로, 지문(誌文)이라고도 한다. 이런 종류의 글은 죽은 사람과 가까운 이가 짓는 게 관례였다. 박지원은 1805년, 이재성은 1809년에 타계했다. 이재성은 박지원의 처남이자 그의 평생 지기(知己)였다.】의 저술을 부탁할 곳이 없었다.
不肖始乃欲裒輯遺事, 傳道後承, 而顧惟識見淺陋, 筆墨荒短, 見聞所及多所墜失.
불초(不肖)한 내가 막 남겨진 일들을 모아 후손[後承]에게 도를 전하고자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식견이 얇고도 좁으며 필력이 거칠고도 하잘 것 없으며 보고 들어 도달한 것 중 놓친 게 많았다.
嘗讀古人所述家庭文字.
일찍이 옛 사람이 아버지에 대해 기록한 글을 읽어보았다.
如邵氏聞見之錄, 呂氏家塾之記, 類多不棄瑣細而悉書之, 其想像遺徽, 反有勝於謹嚴之作.
예를 들면 소백온(邵伯溫)【소백온(邵伯溫): 송 휘종(宋徽宗) 때 사람. 소옹(邵雍)의 아들로 자는 자문(子文). 저서에는 역변혹(易辨惑)ㆍ하남집(河南集)ㆍ견문록(見聞錄) 등이 있다.】의 『견문록(見聞錄)』이나 여희철(呂希哲)의 『가숙기(家塾記)』는 대체로 하잘 것 없는 것도 버리지 않고 모두 기술하여 남겨진 모습을 상상하기에 도리어 근엄한 작품보다 나음이 있었다.
於是, 竊倣其法例而爲之, 片紙寸藁, 隨得隨藏, 如古人盎葉之書.
이에 그 방법을 본떠서 지으니 짧은 편지나 단편이라도 얻는 대로 저장하여뒀으니 옛 사람이 감나무 잎에 써서 항아리에 모든 글【앙엽지서(盎葉之書): 옛날에 종이가 없어 감나무 잎에 글을 써서 항아리에 모아뒀다는 고사가 있음.】처럼 했다.
自癸酉春, 始今四年矣, 乃删其繁縟, 去其重複, 凡二百有餘條.
계유(癸酉)년 봄으로부터 막 4년째 되는 날로 번잡한 것을 깎아내고 중복된 것을 없애니 200여의 남은 조목이 있게 됐다.
頗有據聞直錄, 若欠愼重, 而未敢輒事刪削者, 以先君之風采神韻, 猶或可想見於此等處, 覽者或恕之歟?
매우 들은 것에 의거하여 곧장 기록했기에 신중함이 빠진 듯하지만 감히 쉽게 사례가 잘려내지 않은 것은 아버지의 풍모와 정신이 오히려 혹 이런 등등의 일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이니 보는 이들은 혹 그걸 헤아려 주었으면 한다.
丙子孟秋, 不肖男宗采泣血謹書.
병자(1816)년 초가을에 불초(不肖)한 아들 종채(宗采)가 피눈물 흘리며 삼가 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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