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긍정감의 중요성
그 차이가 갈라지는 지점을 좀더 자세히 검토해보자. 일단 기본은, 자기 체질의 장점을 지켜나가면 박통(博通)에 도달하는 것이고, 이를 버리고, 다른 체질을 흉내 내면 사심(邪心)으로 빠진다는 것이다. 모든 체질에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왜 남을 흉내 내게 되는가? 한 마디로 자기가 자기 자신을 못 믿기 때문이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인식 부족, 자기 긍정심의 부족, 이런 것 때문이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보는 교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벼락부자가 된 사람, 벼락출세를 한 사람이 많다. 즉 자기의 사회적 위치는 갑자기 올라가버렸는데 자기 긍정심은 과거의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 이 차이를 빨리 메우려는 마음이 교심(驕心)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반면에 벼락출세를 하고 벼락부자가 돼도 교만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출세 이전에 이미 자기를 긍정적으로 보던 사람이다. 출세를 하든 부자가 되든, 과거 자신의 모습을 굳이 감추거나 바꾸려 하지 않는다. 요란을 떨며 자신을 바꿀 필요가 없다 보니 교심(驕心)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옛날 우리 할머니들의 교육방식에 대해서 언젠가 한 번은 말하고 싶었는데, 마침 이 문제와 관련되어 말하면 적절할 듯하다. 옛날 할머니들은 “아이구, 우리 강아지”라며 손자, 손녀를 무조건 감싼다. 그러면 요즘 젊은 부모들은 자식 버릇 나빠진다고 질색한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자기 긍정성이 길러진다.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잠재의식이 생겨난다.
만일 할머니가 손자, 손녀가 할 일까지 대신 해주고, 손자, 손녀의 잘못된 주장을 떠맡아서 대신 남과 싸워주는 수준까지 되면 그때는 분명히 아이의 버릇만 나쁘게 하는 부작용이 더 커질 것이다. 의존성을 높이고, 그릇된 생각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철저히 감싸주되, 집 밖에서의 일은 너 스스로 잘할 수 있다고 격려를 통해 해결하는 수준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 경우에 집안에서 감싸주는 것은 부정적인 효과보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훨씬 더 크다.
아이들도 부모라면 대신해서 뭘 해주길 바라지만, 할머니라면 늙고, 힘도 없고, 늘 새롭게 바뀌는 세상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많아서 무언가를 대신 해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힘들고 지쳤을 때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감싸주는 그런 모습을 바라는 것이다. 꼭 할머니가 아니더라도 이모든 삼촌이든 누군가 그런 든든한 빽을 하나 가지고 자란 아이는 확실히 정서적 안정감이 뛰어나다. 아이는 강제로 무얼 시켜서 키우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라도록 보살펴서 키우는 것이며, 스스로 자라는 가장 큰 바탕은 ‘자기 긍정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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