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너무 개념적인 이야기만 이어지고 있으니, 시선을 지하철로 옮겨보자. 지하철에 앉아 있는데 노인 한 분이 탔다. 경로석은 다 차 있고, 아무래도 일어나서 자리를 비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리를 양보는 하는데, 양보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어떻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렇다. 노인분이 두리번거리며 빈 자리를 찾다가 나와 눈이 마주칠 때 일어난다.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쪽으로 다가오시기 시작하면 내리는 척하고 문 앞으로 간다. 혹시 옆에서 젊은 사람이 잽싸게 달려들면, 그때는 “노인 분 앉으시라고 양보한 건데요”라고 조용히 말하고, 그런 불상사가 안 생기면 그냥 문 앞으로 가서 서면 된다.
만일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자리를 양보하면 어떨까? 혹시라도 자리를 양보받았다는 것에 많이 미안해할지도 모른다. 자리를 양보받을 나이가 되었다는 것에 우울해할지도 모른다. 자리를 양보했는데 고맙다는 말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앉으면, 양보해준 쪽이 기분 나빠질지도 모른다. 또는 고맙다는 말을 너무 강조하거나 요즘 젊은 것들 운운하며 장광설을 늘어놓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침 내리는 사람이 있어 빈 자리를 얻었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서로 아무 부담이 없을 것이다.
태음인은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데 느리다. 위의 상황만 해도 소양인이라면 순간순간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상대도 기분 좋고 자신도 기분 좋은 상황을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태음인이 감정 파악에 느린 단점을 보완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험적 접근에 익숙하고, 경험들을 쉽게 버리지 않고 모아둔다는 장점으로 보완이 가능하다. ‘내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기분이 어땠는가?’ ‘내가 잘 아는 사람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행동을 했었나?’ 등등에서 출발해서, ‘내가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면 기분이 어떨까?’까지 생각할 수 있다면, 그때에야 비로소 위에서 말한 방식의 자리 양보하기와 같은 행동이 가능해진다.
태음인이 교류를 넓히는 과정을 이야기하다가 지하철 이야기로 갔는데, 위의(威義)에 도달하고 싶으면 교류의 범위를 넓힐 때마다 그런 식으로 하라는 것이다. 새로운 교류가 시작될 때마다 상대의 입장에 서는 연습을 해보면 된다. 방법은 자신의 경험 창고에서 상대의 현재 상황과 가장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경험을 끄집어내어 비교해보는 것이다. 태음인에게는 익숙하고 잘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다만 늘 그런 자세를 유지하여 이를 버릇으로 만드는 일이 어려울 뿐이다. 이것을 버릇으로 만들 수 있으면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 느려서 생기는 대부분의 어려움이 줄어든다. 위의(威義)에 도달하는 첫걸음이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