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서에서 타자의 논리를 찾아내다
그러나 진사이는 ‘서’의 공부가 결국 타인의 고유한 욕망과 판단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공부는 자기 수양으로서의 충 공부를 통해서는 확보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나와 다른 누군가를 만나야만 ‘서’의 공부가 실현되는 것이지요. 진사이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무릇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매우 분명하게 알지만, 남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막연하여 살필 줄을 모른다. 그러므로 남과 나 사이가 항상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마치 북쪽의 호(胡)와 남쪽의 월(越) 사이와도 같다. (…) 진실로 남을 대할 때 그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어떠하고, 그가 대처하고 행하는 것이 어떠한지를 살펴서, 그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고 그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삼아 자세히 살피고 헤아려야만 한다. (…) 정자는 “자신의 마음을 남에게 이입하는 것을 서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건대, 자신의 마음을 남에게 이입하는 것은 서가 아니고 곧 서를 사용하는 요점일 뿐이니, 모두 서를 행한 이후의 일이다. 『어맹자의』 「충서」
夫人知己之所好惡甚明, 而於人之好惡, 汎然不知察焉. 故人與我, 每隔阻胡越. (…) 苟待人, 忖度其所好惡如何, 其所處所爲如何, 以其心爲己心, 以其身爲己身, 委曲體察, 思之量之. (…) 程子曰, 推己之謂恕. 愚以謂, 推己非恕. 乃用恕之要, 皆恕以後之事也.
부인지기지소호오심명, 이어인지호오, 범연부지찰언. 고인여아, 매격조호월. (…) 구대인ㅇ, 촌탁기소호오여하, 기소처소위여하, 이기심위기심, 이기신위기신, 위곡체잘, 사지량지. (…) 정자왈, 추기지위서. 우이위, 추기비서. 내용서지요, 개서이후지사야.
수양하는 자기 내면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세계에서 진사이가 발견한 것은 바로 ‘타자성’이라는 문제였습니다. 타자란 나와는 다른 생각과 욕망을 가지고 있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분명 내가 생각한 것, 그리고 내가 욕망한 것은 타자의 그것과 다를 수 있지요. 바로 이 지점에 진사이의 ‘서(恕)’ 개념이 지닌 고유한 철학적 의의가 있습니다. 그에게 서란 타자의 생각과 욕망, 그리고 행동 양식을 읽어내려는 주체의 의지와 사유 작용을 의미합니다. 우선 타자의 고유성을 제대로 포착할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타자에게로 이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사이는 ‘자신의 마음을 남에게 이입하는 것은 서를 행한 이후의 일’이라고 설명했던 것입니다. 만약 타자의 타자성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만을 믿고 확충한다면, 그것은 결국 타자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의도치 않은 폭력으로 귀결될 수도 있습니다.
정리하면, 주희는 수양하는 주체와 자기 내면의 본성 사이의 관계에 보다 집중했던 인물입니다. 내 마음에 조금의 허위도 없다면, 마음속에 깃든 본성이 밝게 실현될 것이라고 주희는 확신했지요. 그리고 이런 경지에 이른 사람을 그는 성인(聖人)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와는 달리, 진사이는 수양하는 주체와 외부의 타자 사이의 관계에 집중했습니다. 나 자신에게 나만의 생각과 욕망이 있는 것처럼, 타자에게도 그만의 고유한 생각과 욕망이 있다는 점을 진사이는 긍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朱熹 | 伊藤仁齋 |
忠: 盡己 恕: 推己及人 |
忠: 竭盡己之心 恕: 忖度人之心 |
忠이 이루어지면 恕도 완료됨 | 忠과 恕는 별도의 공부 필요 |
같은 理를 지닌 존재이기에 | 타인은 고유한 욕망을 지닌 존재이기에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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