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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옛 이야기 전문가 김환희 - 2. 전공과 생활 사이, 이상과 현실 사이 본문

연재/만남에 깃든 이야기

옛 이야기 전문가 김환희 - 2. 전공과 생활 사이, 이상과 현실 사이

건방진방랑자 2019. 4. 2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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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대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가볍고도 무거웠다. 이런 식으로 저자를 찾아간다는 것이 김환희 선생님에게든 우리에게든 신나면서도 그 반면에 어색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춘천교대 홍익관 305호의 문을 노크하자마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김환희 선생님의 첫 인상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옆집 아주머니 같은 편안한 인상이었다.

 

 

 김환희 선생님을 만나러, 춘천교대에 왔다.

 

 

 

수많은 뿌리는 하나의 줄기로 자란다

 

선생님은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림을 자주 그리곤 했지만 그 그림이 그렇게 맘에 들진 않았단다. 그런 사정 때문에 미술은 관두고 문학 작품을 정신없이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교에 가서는 불어를 전공하였고 대학원에선 비교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셨다. ‘옛이야기평론가인데 왜 하필 불어과에 입학하셨을까?’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고미숙씨도 대학교에선 독문학을 전공했다가 대학원에 가서 국문학으로 전공을 바꿨다고 했는데, 두 분의 그런 삶의 방향이 왠지 모르게 닮아 보였다.

이쯤 되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처음부터 찾아 그대로 하면 되지, 괜히 삥 돌아왔다고 푸념을 들만도 하다. 하지만 인생의 묘미는 항상 지나봐야만 아는 것이지 않을까. 대학교 전공이 그렇게 쓸데없는 게 되나 했는데, 지금에 이르러 다양한 나라의 옛이야기를 비교분석하려다 보니 아프리카 민담을 분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민담은 불어로 써져 있어 남들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었노라고 미묘한 삶의 흐름을 이야기해주셨다. 어느 경험이든 쓸데없는 경험이란 없다.

 

 

 

예술인은 경계인이다

 

선생님은 자신을 경계인이라고 표현했다. 막상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까지 땄지만, 그걸 활용하여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현실은 없었으니 말이다. 실용되지 않는 학문의 비애를 선생님은 경계인이라고 표현했다. ‘한문을 전공으로 선택한 내 입장에선 십분 이해되는 표현이었다.

경계인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자신의 전공을 포기하고 교양과목을 가르칠 강사가 되거나 아예 모든 배웠다는 의식을 내려놓고 전혀 다른 길을 택하거나 하는 거였다. 선생님도 어느 순간엔 자신의 그런 현실이 괴로워서 돌파구를 마련하느라 교양영어를 가르치기도 하셨다고 한다. 자신이 애정을 지녔던 과목이 아닌, 전혀 상관없는 과목을 가르칠 때의 그 비애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옛이야기에 대한 관심을 버리진 않으셨단다. 미술도 좋아하고 문학작품도 좋아하던 소녀는 그 둘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옛이야기분석을 자신의 연구영역으로 택한 것이다.

 

 

  괴물과 싸우면 괴물을 닮아가고, 평범한 사람을 연구하면 평범한 사람이 되어간다. 건호에게 직접 싸인까지 해서 주신 책이 보인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사람에 의한, 평범한 사람을 위한 민담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전에는 영어를 가르치면서 들던 자괴감이 옛이야기를 분석하면서부터는 말끔히 사라졌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즐기는 사람(好之者, 不如樂之者)’의 경지에라도 이르렀다는 말인가?

전혀 그런 말이 아니었다. 옛이야기로 만들어진 민담의 구연자들은 대단한 학식이나 사회가 원하는 스펙을 지니지 않은 평범한 갑남을녀甲男乙女였을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읊은 우리네의 소중한 이야기들이 지금은 대단한 자료인양 여러 박사들이 파고들어 연구하고 있는 셈이다. 박사가 연구하는 대상이 갑남을녀가 노래한 민담이라는 그 사실에서 선생님은 자괴감이란 감정이 과한 감정이라 느낀 것이다. 배웠다는 자의식, 그리고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는 분별의식이 그 모든 자괴감의 원인이었는데 연구하는 자료들의 저자들은 자의식도 분별의식도 없는 순수한 우리네 이웃이었으니 말이다. 그 때부터 선생님은 마음이 편안해졌고 경계인이라는 것도 당연한 사실처럼 인정하며 열심히 연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민담엔 우리네의 소중한 가치가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예술인은 당연히 왕따가 될 수밖에 없노라고 했다. 책에 빠져 사는 문학인, 책을 들여다보며 분석하는 평론가, 장구의 신명에 몸을 흔들며 무아지경에 빠진 연주인, 춤사위에 몸을 맡겨 세상과의 경계를 잊은 댄서(무당)에게 누가 가까이 갈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예술에 빠진다는 것은, 존재를 건 모험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나를 버릴 각오가 있지 않으면 애초에 예술을 흉내만 내는 흉내쟁이에 그치고 만다. 그렇기에 그 묘한 매력에 빠져 나를 버릴 각오로 달려들어 그 묘한 매력에 빠져 사는 것이다. 누군가가 기타는 악마의 악기라고 했다던데, 그와 같이 말한다면 예술은 악마의 노림수가 분명하다.

그런데 도대체 예술엔 어떤 매력(마력)이 있기에, ‘경계인이 되어가면서까지 몰입하고 빠져드는 것일까? 선뜻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돈과 명예는 외부적인 요소니까 포기할 수 있다 치자, 그런데 내부에서 일어나는 외로움에는 어떻게 맞설까? 꼭 그런 희생까지 각오하며 무언가에 푹 빠져들어야만 하는 걸까?

 

 

 상징사전이나 다양한 도판을 보여주셨다.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사물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목차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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