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아는 자와 좋아하는 자와 즐기는 자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好, 去聲. 樂, 音洛.
○ 尹氏曰: “知之者, 知有此道也. 好之者, 好而未得也. 樂之者, 有所得而樂之也.”
○ 張敬夫曰: “譬之五穀, 知者知其可食者也, 好者食而嗜之者也, 樂者嗜之而飽者也. 知而不能好, 則是知之未至也; 好之而未及於樂, 則是好之未至也. 此古之學者, 所以自强而不息者歟?”
○ 茶山曰: “知者聞而識其善也, 好者行而悅其味也, 樂者得而享其充也.”
해석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공자께서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고 말씀하셨다.
好, 去聲. 樂, 音洛.
○ 尹氏曰: “知之者, 知有此道也.
윤순(尹淳)이 말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은 이 도가 있음을 아는 것이고,
好之者, 好而未得也.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좋아하되 터득하진 못한 것이고,
樂之者, 有所得而樂之也.”
그것을 즐긴다는 것은 터득하여 즐길 줄 아는 것이다.”
○ 張敬夫曰: “譬之五穀, 知者知其可食者也,
장경부(장남헌)가 말했다. “오곡으로 예를 들면 아는 사람이란 그 먹을 만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好者食而嗜之者也,
좋아하는 사람이란 먹고 즐길 줄 아는 것이며,
樂者嗜之而飽者也.
즐기는 사람이란 그것을 즐기며 배불리 먹는 것이다.
知而不能好, 則是知之未至也;
알되 좋아하지 않으면 이것은 앎의 미진함이고,
好之而未及於樂, 則是好之未至也.
좋아하되 즐김에 미치지 못하면 이것은 좋아함의 미진함이다.
此古之學者, 所以自强而不息者歟?”
이런 이유로 옛날 학자들은 스스로 힘써 쉬지 않았던 것이다.”
○ 茶山曰: “知者聞而識其善也,
다산이 『논어고금주』에서 말했다. “아는 사람이란 들어 그 선을 아는 것이고,
好者行而悅其味也,
좋아하는 사람이란 행동하여 그 맛을 즐기는 것이며,
樂者得而享其充也.”
즐기는 사람이란 터득하여 내면에 확충하여 누리는 사람이다.”
○ 호학은 앎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요, 앎이란 정확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치열하게 아는 자만이 그 대상을 좋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치열하고 좋아할 수 있는 자만이 그 대상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앎과 좋아함과 즐김은 가치관의 서열이 아니라, 오직 치열한 앎이 지향해야 할 상향(上向)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결국 앎과 좋아함과 즐김은 일체(一切)인 것이다. -『논어한글역주』, 470~472
○ ‘논어’ 옹야(雍也)편의 이 장은 삶과 공부에서 알 知(지), 좋아할 호(好), 즐거워할 락(樂)의 세 단계를 차례로 비교하고, 락(樂)을 궁극의 이상으로 삼았다.
지(知)는 시(矢)와 구(口)로 이루어져 있다. 화살 시(矢)는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어 서약할 때의 표지로 사용했으므로 ‘맹세한다’의 뜻으로 사용된다. 구(口)는 흔히 ‘입 구’라고 풀지만 실은 입과는 관계가 없다. 본래 신에게 기도하는 글을 넣어두는 그릇의 모양이었다. 따라서 지(知)는 신에게 맹세하는 일을 가리켰으며 ‘분명히 한다’라든가 ‘분명히 깨닫는다’는 뜻을 지니게 되고 ‘맡아서 행한다’의 뜻으로도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지(智)는 지(知)에 신성한 방패인 간(干)을 더해서, 신에게 맹세하는 일을 더욱 신성화한 글자다. 하지만 뒤에 지(知)가 ‘안다’는 동사로 쓰이는 데 비해 지(智)는 ‘지식’의 뜻으로 더 많이 쓰이게 되었다. 호(好)는 갑골문자에서 녀(女)가 자(子)를 안은 모양이다. 곧, 어머니가 어린 아들을 안은 모습이다. 거기서부터 아름답다나 친하다의 뜻으로 쓰였고, 모든 것이 좋다는 의미에서 ‘좋다’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락(樂)은 손잡이가 달린 방울에 술이 붙어 있는 모양인데 춤사위 때 그런 방울을 흔들어서 신을 즐겁게 하는 일을 가리켰다. 음악 악, 즐거워할 락, 즐길 요의 세 뜻과 음으로 사용한다. 불여(不如)는 둘을 비교해서 앞의 것이 뒤의 것만 못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삶의 가치 있는 일에서 보면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더 높은 단계이고, 좋아하는 것보다 즐거워하는 것이 더 높은 단계이다. 다만, 공자는 스스로 학문을 좋아한다고 했지, 즐거워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우리도 자기 일에서 궁극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쉽게 자만해서는 안 될 일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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