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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7장 마르시온의 등장 - 불타와 예수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7장 마르시온의 등장 - 불타와 예수

건방진방랑자 2022. 3. 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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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와 예수

 

 

불타는 깨달음(大覺) 자체가 매우 지적인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설법은 매우 지적이었다. 그리고 아난(阿難陀, Ānanda)과 같은 다문(多聞)의 지적인 제자가 있어 그의 설법의 기록을 전담했다. 물론 아난의 기록은 암송의 형태였다. 그리고 불타가 입적한 직후에 이미 500명의 장로ㆍ비구가 왕사성(王舍城, Rājagṛha)에 모여 불타의 말씀을 결집하여 아함과 율장의 일정한 형태로 만들었다(물론 이것도 구송의 결집이었는데 3차 결집 때에 문서화시켰다.) 그러니까 불교는 출발부터 경전불교였던 셈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경우는 상황이 매우 달랐다.

 

예수는 유대교전통 전체를 뒤엎을 만큼 대단한 지력의 소유자였지만 그의 강론의 내용은 전혀 지적인 것이 아니었다. 불타의 깨달음 속에는 요즈음 말로 심리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학적인 내용이 있지만, 예수의 말씀에는 그러한 학적이고 이성적이고 사변적인 내용이 없다. 전혀 헬레니즘의 지적 분위기와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선포며 믿음의 대상일 뿐이며 구원의 외침이다. 어느 여인이 나에게 큰마음을 먹고 눈물을 흘리면서 안타깝게 사랑해요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메시지를 발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플라톤의 에로스론을 분석하는 강론을 펼친다면 나는 미친놈이다. 그 여인을 웅켜 안고 키스를 해주든가 그렇지 많으면 애석하지만 등 돌리고 뒤돌아서야 한다. 그것은 실존의 결단을 요구하는 문제다. 하물며 예수의 천국의 선포이랴!

 

따라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지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소수 엘리트가 아니었다. 헐벗고 굶주리고 애통하고 억압받는, 심령이 가난한 대중들이었다. 물론 그의 직전제자라 하는 사람들도 전혀 지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12제자가 모두 지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아마도 가롯 유다가 가장 지적인 인간이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갈릴리 북단의 작은 마을의 한 어부였을 뿐이다. 어부가 무슨 논문을 쓸 리는 없다. 물론 예수는 갈릴리 어부에게 지적 작업을 요구할 만큼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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