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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2부 뿌리① - 5장 문명의 통합을 낳은 원정, 그리스+오리엔트=헬레니즘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서양사, 2부 뿌리① - 5장 문명의 통합을 낳은 원정, 그리스+오리엔트=헬레니즘

건방진방랑자 2022. 1. 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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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오리엔트=헬레니즘

 

 

필리포스의 마케도니아 왕국은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 덕분에 제국으로 도약했으나 다시 왕국으로 격하되는 기간도 그에 못지않게 짧았다. 그가 죽자 그의 부관(디아도코이)들은 50년간 피비린내 나는 암살과 치열한 전쟁(디아도코이 전쟁)을 벌인 끝에 세 개의 왕국으로 분립했다. 각국의 강역은 그때까지 존재했던 문명권들과 일치한다. 그리스와 소아시아에는 카산드로스 왕조의 마케도니아가 들어섰고, 메소포타미아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시리아가 차지했으며, 이집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지배하게 되었다. 로마가 지중해 세계를 통일하는 기원전 1세기 무렵까지 존속한 이 왕국들을 헬레니즘 왕국이라고 부른다. 헬레니즘 시대라는 말에서 나온 명칭이다.

 

그런데 헬레니즘이라니? 헬레네는 그리스를 가리키는 말이니까(87쪽의 주 참조) 헬레니즘이라면 그리스 정신이라는 뜻이다. 오리엔트와 이집트가 포함된 세계를 왜 헬레니즘이라고 부를까? 헬레니즘이라는 말은 19세기 독일의 역사학자인 드로이젠(Johanm Gustav Droysen)헬레니즘의 역사(Geschichte des Hellenismu)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서구적인 시각이 짙게 배어 있는 말이다. 그 덕분에 헬레니즘 문화를 그리스 문화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해졌지만, 그것은 잘못이다. 비록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그리스 측이었으나 문화의 중심은 오리엔트였다. 단적인 예로, 헬레니즘 세 왕국 가운데 가장 번영한 것은 이집트였고 마케도니아는 가장 국력이 약했다.

 

헬레니즘 시대의 이집트는 처음부터 강력한 전제정치를 확립하고, 산업과 무역의 중심지가 되어 신왕국 시대 이래 중흥기를 구가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이름을 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 시대에 인구 50만 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도시이자 국제적 무역항으로 발돋움했다(알렉산드로스는 제국의 변방에 신도시를 건설해 퇴역 병사들을 주둔시키고 알렉산드리아라고 불렀다. 당시에는 중앙아시아 일대까지 수십 군데의 알렉산드리아가 있었는데, 지금까지 남은 것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뿐이다). 여기에 수십만 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도서관과 박물관이자 학술 연구소의 기능을 한 무세이온(Mouseion, ‘뮤즈의 집;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박물관museum이라는 말이 나왔다)까지 갖추고 있어 당시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없는 것은 눈[]뿐이었다고 한다(그러나 그 유명한 고대의 도서관은 4세기에 그리스도교의 이교 문화 배척으로 불타 없어지고 만다. 당시 그리스도교는 이교도를 야만인 취급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어느 것이 야만적인 행위였는지 모를 일이다).

 

 

교류를 낳은 전쟁 페르시아 전쟁은 유럽이 오리엔트의 공격을 방어한 것이었지만,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은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 세계가 문명의 고향인 오리엔트를 공격한 사건이었다. 사진은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드에 나오는 장면을 표현한 <라오콘 군상>으로 헬레니즘의 대표적 조각품이다.

 

 

그러나 오리엔트적 요소만 두드러졌다면 굳이 헬레니즘 시대라는 말을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오리엔트식 전제군주의 의례를 도입했을 뿐 아니라 페르시아 귀족들을 친위대로 임명하고 휘하 병사 1만 명을 페르시아 여성과 결혼하게 하는 등 그리스적 요소와 오리엔트적 요소를 통합하려 애썼다. ‘땅끝까지 가본 그로서는 자신의 제국이 곧 전 세계였으므로 영토적 통합만이 아니라 문물과 제도의 통합도 이루고 싶었을 것이다. 오늘날 남유럽과 아라비아권 민족들의 외모가 비슷해진 데는 그런 통합의 영향이 크다. 뿐만 아니라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그리스어가 공용어헬레니즘 시대의 고대 그리스어를 코이네(Koine)라고 부르는데, 공용어라는 뜻이다. 원래 그리스에서는 폴리스마다 방언의 차이가 심했으므로 그리스를 정복한 마케도니아는 아티카 방언과 이오니아 방언을 합쳐 표준어로 정했다. 이렇게 형성된 코이네는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으로 페르시아와 이집트는 물론 인도 서부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당시 전 세계가 사용한 언어였으니 만국 공용어의 자격이 충분하다 하겠다로 사용되었으며, 그리스식 폴리스들이 곳곳에 세워졌다. 또한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로는 그대로 동서양의 교통로가 되었다. 특히 마케도니아군이 인도에서 퇴각할 때 개척한 인더스 강에서 페르시아 만까지의 해로는 이후 로마 시대에 인도와 지중해 세계를 잇는 중요한 무역로가 된다.

 

더 중요한 통합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있다. 그리스와 오리엔트는 학문과 예술 등 문화의 모든 면에서도 한 몸이 되었다. 그리스 철학은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키니코스학파(견유학파), 키레네학파 등으로 확대 발전되면서 헬레니즘 철학의 문을 열었다(스토아학파를 정립한 제논이 키프로스의 셈족 출신이고, 견유학파를 연 디오게네스가 흑해 연안 출신이라는 점은 당시 학문의 국제화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한다). 과학에서도 수학은 그리스의 것이 확산되었는가 하면 천문학은 바빌로니아의 것이 널리 채택되었다.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올 때까지 서구 천문학을 지배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19세기에 비유클리드기하학이 성립할 때까지 불변의 진리였던 유클리드의 기하학, 그리고 오늘날까지 통용되는 부력의 원리를 발명한 아르키메데스 등이 모두 헬레니즘 시대의 산물이다.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은 하나의 역사를 닫고 다른 하나의 역사를 연 중요한 계기였다. 그는 그리스의 폴리스 체제와 오리엔트의 전제군주 체제를 멸망시킨 대신 두 문명을 한데 아울러 세계 문명으로 일구어냈다. 이렇게 해서 열린 또 다른 역사의 문은 로마로 이어졌다. 헬레니즘으로 하나가 된 그리스와 오리엔트, 여기에 서부 지중해 세계(로마)가 편입되면서 서양의 고대는 완성된다.

 

 

그리스의 세계화 헬레니즘 문화가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지도다.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 덕분에 그리스 문화는 서아시아와 인도는 물론 멀리 신라의 불상에까지 자취를 남겼다.

 

 

인용

목차

한국사 / 동양사

폴리스 체제의 종말

왕국에 접수된 폴리스

세상의 동쪽 끝까지 간 알렉산드로스

그리스+오리엔트=헬레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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