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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0장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 테오필로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0장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 테오필로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건방진방랑자 2022. 3. 3.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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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필로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우선 테오필로스라는 이름을 분석해보면 이것 자체가 이미 누가의 국제적 안목에 의하여 만들어진 조어임이 명백히 드러난다. ‘테오필로스테오’(Theos)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필로스는 지혜의 사랑을 뜻하는 필로소피아의 필로와 같은 어원이다. 다시 말해서 테오필로스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이다. 테오필로스’(데오빌로)에다가 고대 로마의 기사단 이상의 계급에게만 붙일 수 있는 각하’(크라티스토스)라는 존칭을 붙임으로써 이미 이 복음서의 낭송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로마의 고위층 관료 내에도 예수가 선포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들이 누가를 지원하고 있다고 하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복음서와 같은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문학장르에 있어서, 특히 누가와 같이 인류 전체의 메시아로서의 그리스도를 만방에 선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헌사라는 것은 자유로운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남ㆍ북한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는 기쁜 소식을 전 인류를 대상으로 전하는 논문을 발표할 때 그 앞에 가장 말썽을 많이 피울 수 있는 미국의 대통령에게 헌사를 증정했다고 해서 그게 크게 문제될 일이 있겠는가? 미 대통령 부시의 허락을 따로 받아야 할 일도 없을 것이다.

 

 

남북평화를 기원하여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내가 부시 각하에게도 바치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부시 각하로 하여금 그 들은 바에서 무엇이 진실한 것인지를 확실히 깨닫게 하려 함이로라.

 

 

더구나 사도행전의 서문에는 보다 추상적인 톤으로 그려져있다.

 

 

~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1:1~2)

 

 

여기서 문맥상으로 보면 데오빌로는 전혀 중요한 데디케이션(Dedication, 헌정)의 대상이 아니다. 단지 데오빌로를 저자의 뒷 빽으로 깔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키는 정도의 언급에 불과하다. 누가는 청중에게 내가 먼저 쓴 글, 즉 복음서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예수라는 인간이 이 땅에서 행하고 가르치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완벽한 일대기(an individual biography)였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것은 각하라는 존칭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이 글이 어느 개인에게 바쳐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데디케이션까지도 데오빌로 각하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누가가 날조했다고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는 누가의 놀라운 드라마적 감각, 그리고 데오빌로 각하라는 이름 속에 들어있는 그의 국제적 감각에 박수갈채를 보내야 한다. 그는 복음서를, 마태가 유대인의 지평 위에 놓았던 것과는 달리, 세계인의 지평 위에 놓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는 분명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헬라ㆍ로마세계의 역사나 문화에 관하여 모든 소양을 지닌 걸출한 지식인이었을 것이다. 그를 바울을 수반한 의사 누가와 동일시하기에는 너무도 문제가 많다. 당시 의사는 사회적 신분이 노예출신이 대부분이었다. 오늘 같은 고위계층의 의사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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