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러리의 은폐
그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난 이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 대주교의 서한에 이들은 배신감을 느꼈을까? 아타나시우스의 생명의 은인인 이 수도승들에게는 아타나시우스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될 수 있었다. 서한이 도착한 후 이들은 계속해서 회의를 열었다. 혹자는 이제 외경이 되어 버린 서적들은 불살라버리자고 했다. 그러나 누군가 신중한 결정을 내렸다.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다. 우리가 이 서물들을 보관할 수는 없으되 태워버릴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서물들은 후대를 위하여 항아리에 밀봉되어 저 바위절벽 동굴 속에 은폐되는 것이 마땅하다. 성스러운 문헌들은 인간이 처리하는 것보다는 신의 의지에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들은 분명 바미얀 대불을 폭파시키는(2001년 3월 1일 폭파 시작) 21세기의 탈레반 미치광이들보다는 훨씬 더 온건한 정신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들이 그 항아리를 묻은 곳은 파바우 파코미우스 수도원에서 보이는 한 10리 밖의 자발 알 타리프(Jabal al-Tarif, or Gebel et Tarif) 바위산 절벽기슭이었다. 항아리를 땅에 파묻고 둥근 바위로 눌러놓은 것을 보아, 그것을 파묻은 사람은 언젠가 그것을 다시 가져갈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 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그리고 1578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조선 땅에서는 이런 기적은 일어날 수가 없다. 손때묻은 책이 항아리 속에서 16세기 동안을 온전하게 버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너무 축복받은 삼천리금수강산의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곰팡이도 그 신의 혜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습기는 치명적이다. 쿰란이나 체노보스키온에서 고고학적 기적이 발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삶의 환경이 너무도 각박하기 때문이다. 습기가 없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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