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보면, 몸은 나의 의지를 넘어선 타자이기에 몸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며, 몸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오감이 열리고, 오감이 열리면 감수성이 발달하여 ‘공생’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 갖춰진다는 이야기였다.
아무 생각 없이 정신의 우월성을 이야기하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몸은 극복이 대상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받아들였다고 치자, 그렇다면 정신에 대해서는 어찌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우린 ‘승리는 선수들의 강한 정신력 덕분’이라는 축구 감독의 말을, ‘사람이 그렇게 일관성이 없어서 어떡해?’라는 다른 사람의 평가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이 말속엔 ‘정신이 육체보다 우월한 것’, ‘정신은 분열되지 않고 일관적인 것’이란 인식이 들어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에 거부감이 들지 않게 되었을까? 지금부터 그 이유를 계보학적으로 탐구해보도록 하자.
▲ 축구에서 랭킹이 한참 앞선 팀을 이길 땐 꼭 정신력 운운하는 말이 나온다.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완전무결한 정신?
흔히 서양철학에선 영혼과 육체를 분리心身二元論하여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둘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둘 사이에 위계까지 두고 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는 성경구절만 보아도 영은 신성하며 신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반면, 육은 영을 구속하고 신과 단절시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독교 철학은 100년 사이에 한국인들의 기본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동양철학은 어떨까? 공자가 만든 유교가 주자를 거치며 성리학으로 탈바꿈했다. 성리학은 인도로부터 들어온 불교에 대항하기 위해 불교의 논리를 수용하여 유교를 재해석한 것이다. 『대학』의 첫 구절에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글에 대해 주희는 아래와 같은 주석을 달아 놨다.
사람이 선천적으로 얻은 것으로 빈 듯하지만 꽉 차 어둡지 않고 밝아 모든 이치에 갖춰져 있으며 모든 일에 적절하게 반응한다. 단지 기질이나 천품에 따라 구애받고 욕심에 따라 가려짐으로 어느 순간엔 (마치 없는 듯) 어두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본체의 밝음은 한 순간도 쉬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라면 마땅히 그 나오는 낌새로 인하여 마침내 본성을 밝힘으로 처음의 허령불매한 상태를 회복해야 한다.
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 但爲氣稟所拘, 人欲所蔽, 則有時而昏. 然其本體之明, 則有未嘗息者. 故學者當因其所發而遂明之, 以復其初也.
이 구절만 보아도 정신은 완벽한 하늘의 이치를 타고 나지만, 육체의 기질이나 욕심이 정신의 완벽함을 가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성리학의 내용은 고려말에 처음 들어와 조선의 국교가 되었고 현재까지 한국인들의 인식을 구성하는 주요 철학이 되었다.
서양의 기독교나 동양의 성리학이나 신이 등장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영육을 분리하고 정신을 중시한다는 부분에선 같다.
심신이원론이 만들어 놓은 착각
이런 생각의 전제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정신은 완전무결하다’, ‘정신은 전일하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 근본을 따라 올라가면 우린 그리스 철학에 당도하게 되고 기독교 철학의 근본을 만든 플라톤(세계는 모방품이다. 완벽한 세계는 이데아에 있다)을 만나게 된다. 암흑기인 중세시대는 당연히 심신이원론이 맹위를 떨치던 세상이었다. 그럼 중세가 무너지고 등장한 인문주의 시대엔 달라졌을까?
▲ 카필라성의 왕자인 싯다르타는 '일체개고'라는 깨우침으로 몸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부좌를 하고 식음을 전폐했다.
위의 조각상처럼 몸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한 후에야 싯다르타는 새로움 깨달음으로 가부좌를 풀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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