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성지의 탄생
상기의 『대반열반경』의 붓다와 아난다 사이의 대화는 바로 이러한 원시불교의 성격을 정확하게 규정하여 주는 경전의 근거인 것이다. 붓다는 자기의 신체적 죽음을 감지하며 이와 같이 말했다.
“모든 것은 덧없는 것이다. 변해가는 것을 어찌 머물도록 하겠는가?”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오직 진리에만 의존하여 진리에 도달하고 진리에 따라 행동하는 삶을 살도록 당부했던 것이다. 이때 진리란 법(法)이며 앞서 말한 담마(팔리어, dhamma)라는 것이다. 중국사람들이 말하는 따오(Tao), 즉 도(道)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담마라 하는 것은 너무 추상적이다.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물증이 없다. 담마의 구현체로서 붓다라는 실존인물이 항상 곁에 있을 때는 좋았다. 그런데 이런 구현체가 갑자기 사라지면 과연 우리는 그 추상적인 담마를 실천하고 살 수 있을까?
제자들은 붓다의 죽음을 앞두고 갑자기 허망하고 허무해졌다. 스승이시여! 우리에게 무엇인가 당신을 기념할 수 있는, 당신의 존재를 상기해낼 수 있는, 그래서 당신이 가르치신 담마를 기억해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소서! 이때, 붓다는 자기를 느낄 수 있는 네 개의 장소를 제시한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해결방식이다. 내가 태어났고, 내가 정각을 얻었고, 내가 최초로 설법했고, 내가 열반에 든 이 네 군데를 와서 보면 나라는 사람과 내가 남긴 진리, 내가 평생을 추구했던 담마의 역정을 피부로 느낄 수 있지 않겠느냐? 걱정하지 말지어다!
불교의 4성지는 이와 같이 해서 탄생된 것이다. 그것은 원시불교시대로부터 이미 경전의 근거를 가지고 그 의미가 부여된 것이었다. 탄생지는 룸비니(Lumbini)고, 대각지는 보드가야(Bodhgaya)고, 초전설법지는 사르나트(Sarnath)며, 입멸지는 쿠시나가르(Kushinagar)다. 따라서 이 4성지는 불타의 입멸직후부터 이미 승단에서 정확한 의식을 가지고 기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붓다의 인간적 형상을 만드는 것이 허용될 수 없다면 무엇으로 기념하는가? 이러한 질문이 제기하는 문제는 우리나라 불자들의 상식에 깔려있는 왜곡된 이해방식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상술하겠다.
▲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첫째는 탄생지 룸비니에 우뚝 선 아쇼카 석주, 둘째는 대각지 보드가야, 셋째는 초전법륜지 사르나트 녹야원의 스투파 유적, 넷째는 입멸지 쿠시나가르의 부처님 무덤(Ramabhar Stupa)인데 이곳이 바로 부처님의 시신을 화장한 곳으로 우리나라 신라왕릉 같이 생겼는데 벽돌을 쌓아올린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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