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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한국 탑문화의 발전과정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한국 탑문화의 발전과정

건방진방랑자 2022. 3. 1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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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탑문화의 발전과정

 

 

이러한 석탑의 성격과 의미의 변화는 가람배치 전체에 영향을 주어 통일신라초기부터는 이미 쌍탑식 가람배치가 모든 사찰의 디프 스트럭쳐로 자리잡게 된다. 사천왕사(四天王寺), 망덕사(望德寺)의 쌍목탑체제를 거쳐 감은사(感恩寺)의 쌍석탑체제에 이르게 되는데 이 때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바로 쌍탑의 존재와 더불어 3금당체제 또한 1금당체제로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11금당의 구도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해서 탑이 두개가 되었다는 것은 과거 1탑의 구조에 비하여 그 탑중심 배치가 근원적으로 파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금당이라는 사실은 곧 1탑의 중심구조자리에 금당이 환치되면서 쌍탑은 그 금당을 보좌하는 순수한 조형적 건조물로서 개념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륵사의 쌍석탑과 감은사의 쌍석탑(682년 신문왕 2년때 조성)은 약 반세기의 거리를 두고 있다.

 

이 시기에 백제는 멸망하고 통일신라는 전제왕권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다시 말해서 불교가람의 성격도 탑중심의 평등구조에서 불상중심의 권위구조로 전환되는 결정적 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황룡사의 13금당체제와 감은사의 1금당2탑체제는 탑중심체제와 불상중심체제의 구조적 역전을 극적으로 대비시켜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이다.

 

 

금당   금당   금당
         
    목탑    

<황룡사 13금당 탑중심 불교가람>

    금당    
         
석탑       석탑

<감은사 쌍탑1금당 불상중심 불교가람>

 

 

감은사의 심층구조를 우리가 육안으로 쉽게 확인해볼 수 있는 것이 약 70년후에 등장한 그 유명한 경주 불국사이다. 불국사의 가람배치는 기본적으로 감은사의 그것에서 변화가 없다. 그리고 불국사의 웅장한 대웅전(대웅전은 현재의 명칭일 뿐이다) 앞 마당에 자리잡고 있는 화려한 다보탑(동탑)과 세련된 균형미를 자랑하는 단아한 석가탑(서탑)은 이미 탑의 본래적 의미를 상실한 채, 이미 순수한 조형예술로서 그 아름다운 자태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쌍탑의 대칭성을 무시해버린 것도 엄청난 파격이다. 미륵사지의 석탑과 감은사의 석탑을 비교해 보면, 미륵사지의 석탑은 목탑의 조형적 요소를 가급적이면 충실히 반영할려고 애쓴 반면, 감은사의 석탑은 신라고유의 전탑의 전통을 목탑의 조형성과 결합시켜 단순화시켰다. 그러한 다양한 가능성을 함장한 채 한국의 탑문화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보기힘든 독특한 조형미를 과시하면서 발전하여 나갔다.

 

 

 위쪽의 사진은 감은사의 쌍탑과 1금당 배치이고 아래쪽 사진은 감은사의 탑에서 발전된 불국사의 구조로 쌍탑 대칭구조가 파괴된 배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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