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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부록 8.1. 미륵사에 세 개의 탑이 조성된 이유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부록 8.1. 미륵사에 세 개의 탑이 조성된 이유

건방진방랑자 2022. 3. 1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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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8.1. 미륵사에 세 개의 탑이 조성된 이유

 

 

익산의 미륵사는 멸망해가는 백제의 중흥을 꾀한 서동설화의 주인공 무왕(r, 600~641) 때 창건된 것이다. 삼국유사의 기록과 고고학적 발굴조사의 결과가 일치되므로 조성연대는 이의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남아있는 유일한 유물이 미륵사 두 개의 석탑 중의 서탑이다. 그리고 최근 1992년에는 현존하는 서탑에 준하여 남아있는 부재들을 활용하면서 9층의 동탑을 새롭게 복원하였다.

 

최근의 발굴결과, 서탑과 동탑 사이에 거대한 목탑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이 중앙 1목탑 양쪽 2석탑의 뒤쪽에는 각기 3개의 금당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금당 사이로 회랑이 있어 11금당이 하나의 독립된 사원을 이루고 있는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11금당을 하나의 독립된 사원의 유니트로 보면 3개의 사원 유니트가 합쳐진 모습이다. 이러한 삼탑삼금당(三塔三金堂)의 삼원(三院)식 배치는 당대 어느 곳에도 유례가 없는 유니크한 것으로 미륵사상과 관련 있는 백제인의 창안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그 배치의 심층구조는 황룡사의 일탑삼금당(一塔三金堂)의 체계를 계승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황룡사의 일목탑삼금당(一木塔三金堂) 체계에다가 양쪽으로 목탑(木塔)의 카피로서의 두 석탑(石塔)을 놓으면 그것은 곧 미륵사가 되기 때문이다.

 

금당   금당   금당
         
    목탑    

<황룡사>

금당   금당   금당
         
석탑   목탑   석탑

<미륵사>

 

 

그러니까 미륵사의 전체구조는 어디까지나 금당중심구조라기 보다는 탑중심구조의 사찰배치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새로운 획을 긋는 미륵사의 역사적 의의는 목탑의 카피로서의 두 개의 석탑의 존재에 있다. 왜 그러한 발상을 했을까? 세 개의 탑을 조성해야만 할 필연성이 어디에 있었을까?

 

이것은 역시 삼국유사(三國遺事)권제이(卷第二) 무왕조(武王條)에 나오는 기사에서 그 정해(正解)를 찾을 수밖에 없다. 절 자체의 이름이 미륵사(彌勒寺)라는 사실, 그리고 그 뒤의 산의 이름이 용화산(龍華山)이라는 사실에서 이미 그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결정적 단서는 乃法像彌勒三會, 殿塔廊廡各三所創之, 額曰彌勒寺라는 기사 그 자체에 이미 명료하게 드러나 있다. 기존의 대부분의 번역이 미륵삼회(彌勒三會)’미륵삼존(彌勒三尊)’으로 잘못 교정해놓은 낭설에 근거하여 해석상의 오류를 발생시키고 있으나, 이것은 있는 그대로의 원문에 따라 정확하게 해석되어야 옳다. ‘미륵삼회(彌勒三會)’라는 것은 미륵이 도솔천에 올라간 지 567천만년 후에 다시 인간세로 내려올 때 용화수(龍華樹) 밑에서 세 번의 설법집회를 갖는다는 미륵하생(彌勒下生)의 신앙과 관련있는 것이다. 첫 번째 집회[初會]에서 96억명의 사람을, 두 번째 집회[二會]에서 94억명의 사람을, 세 번째 집회[三會]에서 92억명의 사람을 제도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통 용화삼회(龍華三會)’혹은 미륵삼회(彌勒三會)’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삼국유사의 본문에 있어서 법상(法像)’을 불상과 관련된 뜻으로 애매하게 해석할 것이 아니라, 곧 사찰의 구조를 정확하게 지적한 것으로 한 자 한 자 명료하게 해석해야 한다.

 

여기 ()’은 불상의 뜻이 아니라, ‘본뜬다’(to model after)의 뜻이며, ‘()’은 내면적으로는 사찰을 지은 법도를 의미할 수도 있고, 보통의 용례로서는 상()과 함께 본뜬다는 동사로 해석되는 것이다. 본문을 정확하게 해석하면, ‘그 절은 지은 법도는 미륵이 하생하여 베푸는 용화삼회를 본떠서 금당과 탑과 회랑을 각기 셋으로 하여 창건한 것이다. 그 편액은 미륵사라 하였다.’ 여기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삼회(三會)와 삼소(三所). 즉 세 번 집회를 갖는 세 개의 다른 장소를 용화수 밑에 확보하기 위하여 삼원(三院)의 구조를 가진 미륵사를 용화산 밑에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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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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