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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 부록 11. 불가촉천민을 위해 헌신한 암베드까르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 부록 11. 불가촉천민을 위해 헌신한 암베드까르

건방진방랑자 2022. 3. 1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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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11. 불가촉천민을 위해 헌신한 암베드까르

 

 

암베드까르(Bhimrao Ramji Ambedkar, 1891~1956)는 불가촉천민(the Untouchable)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새로 탄생된 인도공화국의 초대법무장관을 지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인도공화국(Republic of India)의 헌법을 기안했다. 그러니까 인도가 영국식민지에서 벗어나 근대국가로 태동되는 과정에서 인도사회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인 카스트의 문제를 한 몸에 구현하고 투쟁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불가촉천민 부모의 14번째 자식으로 태어난 암베드까르는 학교에서 높은 카스트의 아이들에게 굴욕을 당하면서 성장한다. 그의 아버지는 인도군대의 장교였다. 암베드까르는 봄베이에서 대학을 나오고 뉴욕의 콜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박사를 획득했고 그 뒤로 영국과 독일에서도 계속 공부했고 변호사자격을 획득했다. 1924년 그는 봄베이에서 변호사활동을 개시하면서 불가촉천민의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해서 복지활동과 저널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에는 불가촉천민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사티야그라하(Satyagraha, 진리파지운동)를 전개하였고 1937, 봄베이 고등법원에서 불가촉천민의 권리와 관련하여 승소하는 쾌거를 올렸다. 암베드까르는 간디와 함께 불가촉천민(Untouchables)이라는 이름을 하리잔’(Harijans, Peoples of God)으로 바꾸고 공동의 목적을 향해 매진하기로 하였지만 간디와 적지 않은 긴장관계를 유지하기도 하였다. 불가촉천민의 독립된 선거구를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1947년 초대법무장관이 되어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을 불법화시키는 조항을 명시한 인도공화국의 헌법을 기안하였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국회에 통과시키는 데 수완을 발휘하였다. 1951년 인도정부내에 그의 영향력이 배제되는 것을 개탄하고 사임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근대인도사회에 사회평등과 사회정의의 개념을 법적으로 각인시키는 데 기념비적인 역할을 하였다.

 

195610, 힌두교의 미래에 절망감을 느낀 나머지, 나그푸르(Nāgpur)에서 불가촉천민 20만명과 함께 불교도로 개종하는 제식을 올렸다. 현재 인도사회에서의 불교에 대한 인식은 암베드까르와 밀착되어 있다. 이것은 긍정적인 시각에서 해석되어야 하겠지만, 불교를 불가촉천민의 종교로 낙인을 찍는 부정적인 측면도 강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도 불가촉천민들이 많이 사는 동네 어느 곳에서든지 암베드까르의 흉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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